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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1244

성인들의 후광(後光) 성인들의 후광(後光) 오늘은 전 세계의 교회가 오직 하느님의 영광 속에 자신과 자신의 삶을 봉헌한 모든 성인(聖人)들의 축일을 기념한다. 모든 성인 대축일은 강림하신 성령의 ‘공현’(公顯, Epiphania)이라고도 한다. 이는 성인들 자신이 하느님 성령 안에서 마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은 것이기 때문이다.(요한 12,24) 이는 아직도 지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목적이기도 하며, 그 목적을 향한 우리의 여정 또한 계속된다. 성인(聖人)이 되었다 함은 그가 하늘나라에 입적하여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고, 삼위일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는 것이다. ‘모든 성인 대축일’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오늘은 한해의 전례력 안에서 기념하는 모든 성인들을 한꺼번.. 2004. 11. 1.
'오늘’이 구원의 날이다. '오늘’이 구원의 날이다. 공관복음이 모두 보도하는 예리고의 소경치유사화(18,35-43)에 이어 루가는 오늘 단독으로 ‘예리고 출신 자캐오의 구원사화’를 전하고 있다. 예리고는 요르단강 서쪽, 예루살렘 북동쪽 36Km 지점, 요르단강이 사해(-395m)에 합류하는 북서쪽 15Km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지중해의 해수면보다 250m 낮은 아주 비옥한 땅이었다. 예수님 시대의 팔레스티나 지도를 보면 예리고는 사마리아, 베레아, 이두매아 지방을 서로 이어주는 경계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유다지방의 수도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중요한 관문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예리고에는 지방간의 교역을 감시하면서 세금을 징수하는 많은 세관들이 있었고, 오늘 복음의 주인공인 자캐오는 이들 세관들을 모든 관장하는 세관장으로서 돈.. 2004. 10. 31.
겸손은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는 삶의 기쁨이다. 겸손은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는 삶의 기쁨이다. 유교의 가르침이 몸에 베어있는 우리에게 예전까지만 해도 중용(中庸)사상은 미덕 중의 하나였다. 중용이란 매사를 처리할 적에 치우치지도 기울지도 않는 불편불의(不偏不倚)하거나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무과불급(無過不及)의 방법이나 태도를 가리킨다. 중용을 희구(希求)하는 정신은 유가(儒家)에서 전인간적인 인격의 가장 중요한 바탕을 이루는 기본요소가 되기도 하고, 도덕적 수양의 최고수준을 상징하기도 했다. 중용의 덕은 끊임없는 자기감정의 절제와 섣부른 행위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중용은 곧 극단 또는 충돌하는 모든 결정에서 중간의 방법이나 태도를 취하는 신중한 실행 및 실천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중(中)은 공간적으로 양끝 어느 쪽에도 편향(偏向)하지 않는 것이고,.. 2004. 10. 30.
안식일의 인격적 의미 안식일의 인격적 의미 어느 바리사이파 사람이, 그것도 바리사이파의 한 지도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 식사에 초대했다는 이야기는 4복음서를 통틀어 루가복음에만 보도된다. 루가는 사실 세 번에 걸쳐 바리사이파 사람이 예수를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한 일을 보도하고 있다.(7,36; 11,37; 14,1) 예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이 베푸는 식사에 손님으로 가실 때마다 그 자리에 함께 초대받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주셨다. 루가는 오늘 복음의 식사초대가 안식일에 일어난 일로 소개함으로써, 분명히 예수와 반대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을 것을 암시한다. 음식을 잡수시는 예수를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1절) 아니나 다를까 그때 마침 수종(水腫)으로 온 몸이 부어 고통 받는 병자 한 사람.. 2004. 10. 29.
단죄와 구원의 기준은? 단죄와 구원의 기준은? 루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의 발걸음은 이미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다.(9,51) 예루살렘을 향한 이 여정은 여행이긴 하지만 소풍도 아니고 관광여행도 아니다. 대부분 갈릴래아 지방 출신의 제자들을 서울구경 시키려는 수학여행은 더욱 아니다. 멀지 않아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배척을 받아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예고도 두 번씩이나 있었고(9,22-27; 9,44-45), 사마리아 사람들의 냉대로 말미암아 우회로를 택해야 했던(9,56) 고충을 감안한다면 이 여행이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발걸음은 한 치의 동요도 없이 굳세기만 하다.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그 일행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상경하고 계심을 다시 한.. 2004. 10. 29.
메시아적 혁명을 바라는 두 사도, 시몬과 타대오 메시아적 혁명을 바라는 두 사도, 시몬과 타대오 오늘 교회는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의 축일을 함께 지낸다. 이들은 예수님과 가장 가깝게 지내면서 많은 시간을 보낸 12사도들 중 두 사람이다. 12사도들은 누구였던가? 그들의 신원과 출신을 따지자면 공관복음이 전하고 있는 바, ‘베드로’로 개명된 ①시몬과 그의 동생 ②안드레아, ‘천둥의 아들’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제배대오의 아들 ③야고보와 그의 동생 ④요한은 갈릴래아 출신의 어부들이었고, ⑤마태오는 ‘레위’라고도 불리면서 전직(前職)이 갈릴래아의 세리였으며(마태 9,9; 마르 2,14; 루가 5,27), ⑥시몬도 역시 갈릴래아 출신으로 ‘혁명당원’이었고, 가리옷 사람 ⑦유다는 제자단의 재무관리자로서 스승을 배반한 사도였다. 알패오의 아들 ⑧야고보.. 2004. 10. 28.
내가 하느님나라 건설을 위한 겨자씨와 누룩이 되어야 내가 하느님나라 건설을 위한 겨자씨와 누룩이 되어야 어제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병마에 사로잡혀 굽은 허리 때문에 몸을 펴지 못한 채 18년을 살아온 한 여인을, 그것도 안식일에 회당에서 고쳐주셨다. 이 치유사건은 율법의 멍에를 지고 수백 년을 살아온 불쌍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시고자 하는 하느님 구원의지의 암시적인 표현이다. 이는 곧 예수님의 강생으로 말미암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가 담고 있는 내용이다. 예수께서 계시하시려는 하느님 나라는 신비(神秘) 그 자체이다. 신비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것이기에 예수께서는 이를 설명하시고자 비유를 학습도구로 삼으신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비유의 소재는 겨자씨와 누룩이다. 이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으로 여기는 것들이다. 어떻게 보면 하찮아 .. 2004. 10. 26.
못 박기와 못 빼기 어느 어머니가 행동이 좋지 못한 아들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늘 착한 사람이 되라고 타일렀으나 아들의 행동은 점점 나빠졌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아들을 불러 망치와 못을 한 줌 주었습니다. "앞으로는 좋지 못한 짓을 할 때마다 이 기둥에 못을 한 개씩 박아라" 아들은 그렇게 하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아들은 좋지 못한 행동을 할 때마다 자랑이라도 하듯 기둥에 못을 하나씩 박았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기둥에는 못이 가득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깨달은 나쁜 일들이 저렇게 많은데 자신이 깨닫지 못한 잘못은 얼마나 될는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을까?" 어머니는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부슬비가 내리는 날 이 아들은 기둥에 가득 박힌 못을 오래 바라보았습니.. 2004. 10.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