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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

오늘의 거울 속에 내일이 보인다.

by Oh.mogilalia 2004. 11. 25.

오늘의 거울 속에 내일이 보인다. 


매일 거의 비슷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내일이 전혀 다른 하루가 되리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은 어제의 결과요, 내일은 오늘의 투영(投影)이다.”고 말한다. 내일이 오늘의 투영이라는 말은 ‘오늘이 내일을 미리 비춰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과 전혀 다른 내일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보통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① 하나는 오늘과 전혀 다른 내일을 오늘이라는 시점에서 계획하여 추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D-Day’를 정하거나, 정해진 ‘D-Day’에 맞추어 준비하며 사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오늘은 내일의 거울이다’는 단언(斷言)은 유효하다. 시험을 치루기 위해 시험날짜에 맞추어 공부하거나, 세례를 받기 위해 교리공부를 한다거나, 결혼식이나 잔치 등을 준비하는 경우가 그렇다. 이런 경우에는 통상 준비한 만큼의 성공 또는 실패라는 결과가 주어진다. ② 다른 하나는 스스로가 계획한 적이 없는 예상치 않은 일에 벌어짐으로써 오늘과 전혀 다른 내일을 맞이해야 하는 경우이다. 뜻밖의 사고를 당하거나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그렇다. 이런 경우에는 성공이나 실패, 또는 선택이나 거부 따위의 단어는 설자리가 없다. 여기에는 불응(不應)이란 있을 수 없고 오직 말없이 따라야 하는 순응(順應)만 있을 뿐이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내일이 들이닥쳐, 이를 선택, 혹은 거부하거나, 이에 불응할 수 없고, 순응해야만 한다면, 그런 내일을 오늘에 포함시켜 생각해 보고, 또 대비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현명한 일이다. 세상의 종말이 내가 계획한 일이 아니라고 해서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내가 계획하지 않았으면 네가 계획한 것이고, 네가 하지 않았으면 하느님께서 하신 것이다. 자연의 섭리도 그렇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봄이 가면 여름이 오기 마련이다.(30절) 이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성서적 언어에서 여름이란 곧 열매를 맺는 때를 말하며, 이는 곧 수확이 멀지 않았음을 뜻한다. 수확의 때는 바로 심판의 시기를 의미한다. 성도 예루살렘의 멸망도 하나의 심판이었으며, 계획된 하느님 왕권의 계시였던 것이다. 


예수께서 정확한 세상종말의 때를 말씀하신 적은 한번도 없으시다. 그러나 봄 안에 여름이 포함되어, 봄이 가면 여름이 오는 자연의 섭리와 같이 오늘 안에 이미 내일이 포함되어, 종말의 내일은 분명히 온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은 종말을 맞이해야 할 만큼 익었다. 온갖 거짓과 속임수, 비리와 부정부패, 매관매직과 청탁과 향응, 황금만능주의와 한탕주의, 자연파괴와 인명경시풍조,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天災地變)과 인재(人災) 등이 세상종말의 징조로 드러난다. 어떤 사람은 세상의 이런 모습을 관상(觀想)하면서 ‘세상이 뒤집어지기’를 바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런 세상과 거래하지 않으려고 자신의 몸을 사리고 엎드리며 피하여 숨는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럴 때일수록 “몸을 세우고 머리를 들라.”(루가 21,28)고 말씀하신다. 몸을 세우고 머리를 드는 것은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영원히 남아 있을 주님의 말씀(33절)을 따라 사는 것이다. 내 발의 등불이요 나의 길에 빛이신(시편 119,105) 하느님의 말씀을 붙잡고 옳게 사는 것이다.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