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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

한 사람의 강도만이 예수를 왕으로 알아보다.

by Oh.mogilalia 2004. 11. 21.

한 사람의 강도만이 예수를 왕으로 알아보다. 


오늘은 연중 제34주일로서 한 해 전례력의 마지막 주일이며,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다. 오늘 축일을 정확히 말하면 ‘우주의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축일’(Domini Nostri Jesu Christi, Regis Universorum Solemnitas)이다. 오늘 축일은 1925년 교황 비오 11세가 회칙 ‘과스 프리마스’(Quas primas)를 통하여 제정하였다. 1925년은 325년 가톨릭교회의 첫 공의회로서 ‘니체아 신경’을 선포한 니체아공의회 개최 1,600주년의 해였다. 교황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무참하게 파괴된 참담한 세계상을 니체아 신경을 바탕으로 다시 세우고자 했다. 교황은 우주와 세상의 참된 자유와 평화, 그리고 안정된 질서란 오직 그리스도를 왕 중의 왕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절대적인 통치권 아래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선포하려했던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통치권을 현세적으로만 생각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오늘 대축일은 제정할 당시에는 10월 마지막 주일에 지냈으나, 1969년부터 오늘과 같이 전례력의 마지막 주일에 기념함으로써 우주만물의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길의 궁극적인 목적이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인도하시는 유일한 중개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대략 서기 30년 4월 7일 금요일 오후 예루살렘 북쪽 성벽 밖에 자리 잡은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에 처형되었을 때를 보도하는 대목이다. 반나체로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신 예수, 온 몸은 채찍질과 상처와 피투성이고, 가시관을 쓰다 못해 머리 속에 박고 있는 몰골하며, 신의 모습도 인간의 모습도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참담한 광경이다. 백성의 지도자들인 대제관들과 바리사이 율사들을 물론 형을 집행하는 로마군인들에다 같이 달려있는 강도까지 십자가의 예수를 향하여 맘껏 조롱과 희롱과 모욕을 퍼붓고 있다. ‘이 사람은 유다인의 왕’이라는 죄목이 적힌 명패도 한 몫 거들고 있다. 하필이면 왜 이 대목을 오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의 복음으로 택한 것인가? 오늘 대축일의 의미에 잘 부합하는 자료가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다. 단 한 마디의 말씀으로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신 기적사화를 놔두고, 풍랑을 꾸짖어 잠재운 기막힌 기적(루가 8,22-25)도 있고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도 있는데, 왜 예수 생애의 가장 비참한 이 대목을 복음으로 들어야 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오늘 복음에서 찾자. 


루가는 원전이 될 마르코복음(15,22-32)을 참조하면서, 마르코가 아주 짤막하게 기록하고 있는 예수 양편의 두 강도(27절, 32c절)에 관한 이야기를 크게 확대하여 편집하였다.(39-43절) 이 대목이 바로 문제를 푸는 열쇠이다. 루가는 두 강도를 갈라, 하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수를 모욕하는 편에 세웠으며, 다른 하나는 그 동료강도의 무례함을 꾸짖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참회자로 세웠다. 바로 그가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42절) 하고 간청하였다는 것이다. 참회자의 간청은 헛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이라 할지라도 죄인이 뉘우치기만 하면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받는다는 것은 루가복음의 한결같은 사상이다. 예수께서는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43절) 하고 뉘우치며 간청하는 강도에게 용서와 자비를 한꺼번에 베푸셨다. 


갖은 모욕과 조롱이 난무하는 가운데, 단지 이 강도 한 사람만은 예수가 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말하였다. 이 강도 한 사람만이 ‘사형을 당하여 죽어가는 왕’, 그리스도를 알아본 것이다. 바로 이 대목이 오늘 죽어가는 예수를 생명의 왕으로 고백하는 이유로 충분한 대목이 아닌가? 비록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오직 이 죄인인 강도만이 예수를 왕으로 고백하고, 오늘이 가기 전에 그리스도의 왕국에 든다면 예수는 진정 그 나라의 왕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진리와 사랑의 왕, 정의와 평화의 왕, 봉사와 희생의 왕, 섬김과 겸손의 왕, 용서와 자비의 왕, 금관대신 가시관을 쓴 왕이다. 자신을 낮출 대로 낮추어 신하를 오히려 섬기는 왕인 것이다. 예수께서 회개하는 저 강도를 낙원으로 초대하는 왕이시라면, 나에게도 진정한 왕이시다. 나 또한 저 강도와 크게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나 또한 전례력의 마지막 주간에 즈음하여 나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계신 예수를 만나고 그분께 용서와 자비를 빌 수 있다면 말이다.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