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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

일상(日常) 속에서의 최후

by Oh.mogilalia 2004. 11. 24.

일상(日常) 속에서의 최후 


예루살렘 성전이 무참히 파괴되고, 도성의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며, 죽음을 피해 살아남은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이스라엘의 운명(기원후 70년 8월 29일)은 곧 세상의 종말로 확대해석 된다. 예수께서 세상 종말의 시기에 대한 정확한 언급은 피하셨지만, 그 때 나타날 징조들을 말씀하셨다. 가짜 그리스도의 출현과 민족들 간의 전쟁, 반란과 지진, 기근과 전염병, 천체에 일어날 대변화가 그런 징조들이다. 그런데 이런 징조들이 있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일들이 있다. 오늘 복음은 세상종말의 징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일들을 전해준다. 그것은 바로 예수의 제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박해와 고발, 체포구금과 재판, 항변과 증언, 그리고 고문과 죽음이다. 이는 예수의 제자라면 누구나, 그리스도신자라면 누구나 거치고 치러야 할 마지막 숙명적 단계이다. 


복음서가 보도하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예언과 세상종말과 종말징조에 관한 예언, 그리고 그 전에 선행될 제자들의 박해에 관한 이야기를 대면할 때, 우리는 크게 세 가지 방법으로 해석을 시도할 수 있다. 첫째는 복음서 안으로 뛰어들어 역사적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있는 제자의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경우 모든 말씀은 즉시, 또는 머지않아 일어날 일들에 대한 현실감 넘치는 예언으로 다가온다. 둘째는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신 이후의 어느 시점, 예를 들면, 복음서가 집필된 시점(80~90년)이나 복음서를 읽는 공동체의 시점이나 아니면 과거의 어느 한 시점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박해가 한창인 시기로 옮겨간다면 더욱 좋다. 루가복음의 경우,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이미 과거사가 되어 성취된 예언으로 남게 되며, 박해시기에는 제자들뿐 아니라 수없이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예수 때문에 오늘 복음과 같은 내용의 일을 당하였다. 셋째는 각자가 처해 있는 상황에 그대로 있으면서 오늘 복음을 묵상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는 박해상황도 아니고, (물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종말이 목전에 임박한 그런 시기도 아니다. 그저 교회 전례력상 한해의 마지막 주간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복음서가 제시하는 박해와 종말에 관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양상은 다르지만 믿음을 위협하는 유혹과 박해는 늘 우리 곁에 있으며, 세상의 종말 또한 언제든 분명히 올 것이다. 박해는 그리스도를 증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고, 세상의 종말은 완성의 때가 될 것이다. 종말이란 세상을 끝장내기 위한 사건이 아니라 완성을 위한 하느님 계획의 사건이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한 사건이다. 이는 곧 참고 견디어낸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사건이다. 일상의 박해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인자의 재림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한 각오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마침 교회 달력의 마지막 주간을 보내고 있다는 점을 착안하여야 한다. 사람은 무엇이든 마지막에 이르면 최선을 다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너무 늦어버리면 손을 쓸 수 없다. 일상(日常)의 모든 것을 최후로 여기면서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성의를 다하여 사는 것이다.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