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보는 자’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예리고의 소경에게 광명을 주신 기적사화를 들려준다. 예수님의 일행이 그럭저럭 예리고(예루살렘 북동쪽 36Km 지점)에 당도했다. 예수님의 당도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며, 길에서 구걸을 하던 소경 한 사람도 그 소식을 듣게 된다. 마르코는 이 소경의 이름을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마르 10,46)라고 밝히고 있다. 소경을 앞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나자렛 예수가 왔다는 말만 듣고 일단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는 사람들의 조용히 하라는 꾸짖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큰소리를 질렀다. 소경의 부르짖음이 예수님의 귀에 도달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이미 마음으로 예수를 믿고 있었던 소경은 결국 자신의 믿음으로 광명을 찾는다.(42절)
오늘 예리고의 소경 치유사화를 다른 많은 기적사화 중의 하나로 보기엔 너무 아깝다. 그 이유는 이 기적사화가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에 행하신 마지막 기적이라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소경의 치유기적은 공관복음 모두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것도 복음서 전체의 구조에서 같은 자리인 예루살렘 입성 직전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마태 20,29-34; 마르 10,46-52; 루가 18,35-43) 이런 이유 때문에 오늘 예리고 소경의 치유는 단순한 치유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예수께서는 더 이상 기적을 행하지 않으실 것이다. 만약 행하신다면 그것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로 이루어질 기적뿐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마지막 공식적 기적으로서의 소경 치유기적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가 이 기적의 의미를 잘 알기 위해서는 앞서간 복음, 즉 예수께서 예리고에 당도하기 전에 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복음마다 다소 차이는 있으나, 공통된 내용, 그것은 바로 ‘수난에 대한 세 번째 예고’와 ‘추종의 의미와 섬김의 자세’이다. 마태오와 마르코복음은 ‘수난에 대한 세 번째 예고’에 이어 즉각 ‘추종과 섬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제자들의 예수님의 수난예고를 사실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루가복음에는 ‘수난에 대한 세 번째 예고’ 다음에 오늘 복음인 예리고 소경의 치유사화를 배치하였다. 루가가 ‘추종과 섬김’의 언급을 다루지 않은 이유는 예고의 끝 부분에 마태오와 마르코에 없는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도 조금도 깨닫지 못하였다. 이 말씀의 뜻이 그들에게는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지 못하였던 것이다.”(루가 18,34) 라는 말을 덧붙였기 때문이다.
종합하여 보면, 제자들은 두 눈을 뜨고 자기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었다. 그들은 인자(人子)의 본질적인 부분인 수난과 죽음, 추종과 섬김은 눈을 가지고도 보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난 기적과 권위, 자리와 보상만 보려했다. 이러한 제자들에 비하여 예리고의 소경은 장님의 처지에서 예수님의 본질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소경이면서도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제대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가 믿음의 눈으로 보고 있었던 것을 실제로 보게 해 주신 것이다.
끝으로 오늘 복음에서 “소경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따라 나섰다.”(43절)는 마지막 구절을 주목해야 한다. 바르티매오가 광명을 찾고 예수를 따라 나선 것은 단순히 감사의 표가 아니다. 그는 곧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입성하게 된다. 그것은 바르티매오가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예수님의 마지막 일을 목격하고 증언할 진정한 ‘보는 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참된 기적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보고 믿겠다는 사람들은 보통 볼 수도 없을뿐더러 보고도 믿지 않을 사람들이다. 참으로 보기 위해서는 먼저 믿어야 한다. 오늘 예리고의 소경처럼 말이다.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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