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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의 일상... 2004. 11. 28.
너희가 곧 성전이다. 너희가 곧 성전이다. 성도(聖都) 예루살렘의 불행과 멸망을 예고하신 예수님의 마음은 편치 않으셨다. 그래서 그분은 눈물과 한탄으로 그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러나 눈물이 그분의 발목을 잡을 수는 없는 일, 올리브산을 내려오신 예수께서는 곧바로 성전으로 가셔서 갖은 상혼(商魂)으로 더럽혀진 성전을 정화하신다. 예수님의 성전정화 사건은 4복음서 모두가 보도하고 있다.(마태 21,12-17; 마르 11,15-19; 요한 2,13-17) 익히 알고 있는 바, 요한복음은 성전정화사건을 예수님의 공생활 초기 시점에 두었고, 공관복음은 공생활 종료 시점에 두고 있다. 그런데 루가는 원전이 될 마르코복음을 대폭 축소하였고, 정화의 시점도 예루살렘 입성 다음 날인 것(마르 11,12)을 입성 당일(當日)로 보도하고 있다.. 2004. 11. 27.
잘못을 지적해 주는 친구가 좋은 친구다. 중국 진나라의 중행문자라는 사람이 모함을 받아 도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워낙 일이 급하여 시종 한 사람과 먼저 떠나면서 그를 태울 수레는 준비가 되는 대로 뒤따라 오도록 하였습니다. 길을 가던 도중에 어떤 마을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함께 도망치던 시종이 말했습니다. "이 마을의 현감은 주인님의 옛 동료가 아닙니까? 여기서 쉬다가 곧 뒤따라 오는 수레를 타고 가시는 것이 어떨는지요." 중행문자가 말했습니다. "내가 예전에 음악을 즐겼을 때 그는 나에게 비파를 보내주었고, 내가 패옥을 좋아할 때 그는 옥반지를 보내주었다. 그는 나의 잘못을 충고하려 하지 않고 항상 나의 감정에만 영합하려 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나를 해칠까 두렵구나." 중행문자는 이렇게 말하고 급히 그 마을을 떠났습니다.. 2004. 11. 26.
성 안드레아 사도 : 단 한 사람을 낚는 낚시꾼 성 안드레아 사도 : 단 한 사람을 낚는 낚시꾼 11월의 마지막 날 교회는 안드레아 사도의 축일을 기념한다. 안드레아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으로서 형과 같은 어부였으나, 갈릴래아 호숫가를 거니시던 예수로부터 형과 함께 제자로 불림을 받았다. 안드레아는 베싸이다 출신(요한 1,14), 아니면 가파르나움 출신(마르 1,29)이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안드레아는 처음에 세례자 요한의 추종자였다가 예수의 제자가 된 그 첫 번째 사람이다.(요한 1,35-40) 그리고는 자기 형을 예수께 인도하였다. 신약성서를 살펴보면 안드레아는 복음서에 16번, 사도행전에 1번 등장하는데,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과 승천, 성령강림 사건에 함께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성령강림 이후 안드레아는 흑해 연안의 소아시아 전역과 오늘날 불가리아.. 2004. 11. 26.
산다는 건... 버릇처럼 컴퓨터를 켜고 블로그에 접촉(?)하고는... 접근해 보지만... 별로 쓸 게 없다. 오타만 남발하다가... 그만 두겠지.... 지금 나는 술 제법 취한 상태이고... 아내는 성령회관에 가서 좀더 있어야 올 거고... 맏상주는 독서 과외 때문에 좀더 늦게 올거다.시각은 11시 30분 가까이 가고 있다. 술이 조금은 더 취해 온다. 나는 지금 이런 상태가 너무 좋다. 적당히 취해 어디에도 얽매임이 없다. 모든 걸 수용하거나 내팽겨칠 수 있을 그런 심리 상태이다. 비록 다음날 맛볼 또 다른 축축한 느낌이 어떠할지는 짐작이 되지만....그래서 그만 두어야겠다.힘내야한다. 2004. 11. 25.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 오심’과 ‘다시 오심’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대림시기의 제2주간을 맞이하면서 대림환의 두 번째 촛불을 밝혔다. 대림 제1주일의 말씀주제는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겨냥한 것으로서 세상구원의 성취자이신 그리스도의 재림예고와 그에 대한 준비의 태도로써 ‘항상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는 경고였다.(마태 24,37-44) 오늘 대림 제2주일의 말씀주제는 메시아의 출현에 대한 직접적인 약속으로서 이사야의 예언(40,3-5)이 세례자 요한의 출현과 그가 선포하는 회개의 세례에 의해 성취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고 보면 대림시기가 세상의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염두에 두고 불안과 초조, 두려움과 긴장, 단식과 고행의 시간으로 이어지는 ‘막연한 기다림’이기보다는 메시.. 2004. 11. 25.
오늘의 거울 속에 내일이 보인다. 오늘의 거울 속에 내일이 보인다. 매일 거의 비슷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내일이 전혀 다른 하루가 되리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은 어제의 결과요, 내일은 오늘의 투영(投影)이다.”고 말한다. 내일이 오늘의 투영이라는 말은 ‘오늘이 내일을 미리 비춰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과 전혀 다른 내일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보통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① 하나는 오늘과 전혀 다른 내일을 오늘이라는 시점에서 계획하여 추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D-Day’를 정하거나, 정해진 ‘D-Day’에 맞추어 준비하며 사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오늘은 내일의 거울이다’는 단언(斷言)은 유효하다. 시험을 치루기 위해 시험날짜에 맞추어 공부.. 2004. 11. 25.
잠이 없어졌나? 며칠 전부터 새벽 5시 가까이 되면 절로 눈이 뜨진다. 어제는 왼쪽 종아리에 쥐가 나 일어났고(가끔 나타나는 증세인데 별 일 없을라나 몰라...), 오늘도 4시 반 정도 되어 일어나서는 뒤척이다가 잠이 더 올 것 같지 않아 블로그 갤러리 가족 사진 새로 날짜별로 소트시켜 올려 보고 이 짓거리다.이 놈의 블로그 때문인지... 원~ 요즘은 아침에 좀 일찍 일어나 여유가 있거나, 학교에 출근하자마자 제일 먼저 마음을 빼앗기는 게 요놈이다. 여기에 시간도 많이 빼앗겨 아이들 수행 평가 과제물 챙기는 것도 놓치기 일쑤다. 색다른 재미 탓인지.... 하지만 글 재주가 부족하니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라 더욱 그러하다. 글 잘 쓰는 사람들 보면 부럽기가 그지없다. 까발리기가 두렵지만 명색이 국어를 가르친다는 사람이... 2004. 11. 25.
일상(日常) 속에서의 최후 일상(日常) 속에서의 최후 예루살렘 성전이 무참히 파괴되고, 도성의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며, 죽음을 피해 살아남은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이스라엘의 운명(기원후 70년 8월 29일)은 곧 세상의 종말로 확대해석 된다. 예수께서 세상 종말의 시기에 대한 정확한 언급은 피하셨지만, 그 때 나타날 징조들을 말씀하셨다. 가짜 그리스도의 출현과 민족들 간의 전쟁, 반란과 지진, 기근과 전염병, 천체에 일어날 대변화가 그런 징조들이다. 그런데 이런 징조들이 있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일들이 있다. 오늘 복음은 세상종말의 징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일들을 전해준다. 그것은 바로 예수의 제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박해와 고발, 체포구금과 재판, 항변과 증언, 그리고 고문과 죽음이다. 이는 예수의 제자라면 누구나,.. 2004. 11. 24.
오늘 내 삶의 동기와 지향은? 오늘 내 삶의 동기와 지향은? 어제 복음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동전 두 닢이라는 과부의 헌금(루가 21,1-4)이 과연 자신의 가진 것 모두를 바친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당장은 알기 어렵지만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다. 그 ‘언제’란 바로 종말 때의 심판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종말까지 갈 필요는 없다. 누구보다 자기 스스로가 자신이 행한 행동의 동기(動機, motive)와 지향(志向, intention)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께 바치는 헌금의 가치는 헌금하는 자의 마음이 결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늘 제3자의 시각과 판단이다. 부자가 넉넉한 가운데서 많이 바치고 자랑스럽게 뽐내는 행동과, 과부의 경우처럼 가난한 사람이 어려운 가운데서 가진 모든 .. 2004. 11. 23.
헌금의 가치는 마음이 결정한다. 헌금의 가치는 마음이 결정한다. 오늘 복음은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가진 모든 것을 헌금으로 바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성전에서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부활에 관한 토론으로 그들의 입을 막아버리고(20,27-40),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경계하라(20,45-47)고 가르치신 예수께서 그곳을 나오셔서 성전밖에 설치된 헌금 궤를 보고 계셨다. 예루살렘 성전 밖 ‘여인의 뜰’에는 각각 다른 명목의 헌금 궤가 13개나 있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넉넉함에서 얼마씩을 헌금하였지만, 어떤 가난한 과부는 작은 동전 두 닢을 헌금하였다. 그 두 닢이 곧 과부가 가진 모든 것이었다. 액수로 따지자면 보잘것없는 돈이지만 예수께서는 어느 누구보다 과부의 헌금이 컸다고 하셨다. 가진 것을 몽땅 바쳐버린 과부는 앞으.. 2004. 11. 22.
거창 성당 거창성당은 지난 85년 9월에 혼배미사를 치른 곳이다. 가끔 처가에 와 미사 참례할 때마다 푸근한 느낌이 든다. 지금의 신부님께서 부임하신 후로 교중 미사 후 제공되는 점심이 공짜라서 좋고, 시골의 풍성함이 맛과 함께 해 더욱 좋다. 시골 성당에서 이런 큰 잔치를 매주 실시한다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오늘은 지역 공소에서도 많은 신자들이 함께 한 때문인지 미사 때 성전이 가득찬 모습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겠고, 성당 강당에서 함께 식사와 함께 담소를 나누는 공동체 모습도 너무 좋아 보인다. 내가 사는 울산에서는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모습이다. 우리 본당에서도 한때는 교중미사 후 베다니아라는 성전 옆 빈터에서 차와 다과를 나누며 짧은 시간이나마 형제들과 담소하는 시간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이런 모습이 사라.. 2004.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