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4079

오늘의 거울 속에 내일이 보인다. 오늘의 거울 속에 내일이 보인다. 매일 거의 비슷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내일이 전혀 다른 하루가 되리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은 어제의 결과요, 내일은 오늘의 투영(投影)이다.”고 말한다. 내일이 오늘의 투영이라는 말은 ‘오늘이 내일을 미리 비춰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과 전혀 다른 내일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보통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① 하나는 오늘과 전혀 다른 내일을 오늘이라는 시점에서 계획하여 추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D-Day’를 정하거나, 정해진 ‘D-Day’에 맞추어 준비하며 사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오늘은 내일의 거울이다’는 단언(斷言)은 유효하다. 시험을 치루기 위해 시험날짜에 맞추어 공부.. 2004. 11. 25.
일상(日常) 속에서의 최후 일상(日常) 속에서의 최후 예루살렘 성전이 무참히 파괴되고, 도성의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며, 죽음을 피해 살아남은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이스라엘의 운명(기원후 70년 8월 29일)은 곧 세상의 종말로 확대해석 된다. 예수께서 세상 종말의 시기에 대한 정확한 언급은 피하셨지만, 그 때 나타날 징조들을 말씀하셨다. 가짜 그리스도의 출현과 민족들 간의 전쟁, 반란과 지진, 기근과 전염병, 천체에 일어날 대변화가 그런 징조들이다. 그런데 이런 징조들이 있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일들이 있다. 오늘 복음은 세상종말의 징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일들을 전해준다. 그것은 바로 예수의 제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박해와 고발, 체포구금과 재판, 항변과 증언, 그리고 고문과 죽음이다. 이는 예수의 제자라면 누구나,.. 2004. 11. 24.
오늘 내 삶의 동기와 지향은? 오늘 내 삶의 동기와 지향은? 어제 복음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동전 두 닢이라는 과부의 헌금(루가 21,1-4)이 과연 자신의 가진 것 모두를 바친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당장은 알기 어렵지만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다. 그 ‘언제’란 바로 종말 때의 심판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종말까지 갈 필요는 없다. 누구보다 자기 스스로가 자신이 행한 행동의 동기(動機, motive)와 지향(志向, intention)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께 바치는 헌금의 가치는 헌금하는 자의 마음이 결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늘 제3자의 시각과 판단이다. 부자가 넉넉한 가운데서 많이 바치고 자랑스럽게 뽐내는 행동과, 과부의 경우처럼 가난한 사람이 어려운 가운데서 가진 모든 .. 2004. 11. 23.
헌금의 가치는 마음이 결정한다. 헌금의 가치는 마음이 결정한다. 오늘 복음은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가진 모든 것을 헌금으로 바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성전에서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부활에 관한 토론으로 그들의 입을 막아버리고(20,27-40),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경계하라(20,45-47)고 가르치신 예수께서 그곳을 나오셔서 성전밖에 설치된 헌금 궤를 보고 계셨다. 예루살렘 성전 밖 ‘여인의 뜰’에는 각각 다른 명목의 헌금 궤가 13개나 있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넉넉함에서 얼마씩을 헌금하였지만, 어떤 가난한 과부는 작은 동전 두 닢을 헌금하였다. 그 두 닢이 곧 과부가 가진 모든 것이었다. 액수로 따지자면 보잘것없는 돈이지만 예수께서는 어느 누구보다 과부의 헌금이 컸다고 하셨다. 가진 것을 몽땅 바쳐버린 과부는 앞으.. 2004. 11. 22.
거창 성당 거창성당은 지난 85년 9월에 혼배미사를 치른 곳이다. 가끔 처가에 와 미사 참례할 때마다 푸근한 느낌이 든다. 지금의 신부님께서 부임하신 후로 교중 미사 후 제공되는 점심이 공짜라서 좋고, 시골의 풍성함이 맛과 함께 해 더욱 좋다. 시골 성당에서 이런 큰 잔치를 매주 실시한다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오늘은 지역 공소에서도 많은 신자들이 함께 한 때문인지 미사 때 성전이 가득찬 모습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겠고, 성당 강당에서 함께 식사와 함께 담소를 나누는 공동체 모습도 너무 좋아 보인다. 내가 사는 울산에서는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모습이다. 우리 본당에서도 한때는 교중미사 후 베다니아라는 성전 옆 빈터에서 차와 다과를 나누며 짧은 시간이나마 형제들과 담소하는 시간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이런 모습이 사라.. 2004. 11. 21.
한 사람의 강도만이 예수를 왕으로 알아보다. 한 사람의 강도만이 예수를 왕으로 알아보다. 오늘은 연중 제34주일로서 한 해 전례력의 마지막 주일이며,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다. 오늘 축일을 정확히 말하면 ‘우주의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축일’(Domini Nostri Jesu Christi, Regis Universorum Solemnitas)이다. 오늘 축일은 1925년 교황 비오 11세가 회칙 ‘과스 프리마스’(Quas primas)를 통하여 제정하였다. 1925년은 325년 가톨릭교회의 첫 공의회로서 ‘니체아 신경’을 선포한 니체아공의회 개최 1,600주년의 해였다. 교황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무참하게 파괴된 참담한 세계상을 니체아 신경을 바탕으로 다시 세우고자 했다. 교황은 우주와 세상의 참된 자유와 평화, 그리고 안정.. 2004. 11. 21.
가르침... 그녀의 이름은 탐슨입니다. 그녀는 5학년 학생을 맡은 첫날 학생들 앞에서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그러하듯 그녀 역시 자기 반 학생들을 보며 그들 모두를 다 똑같이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테디 스타더드라는 작은 소년이 앞 줄 자기 자리에 풀 죽은 상태로 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세스 탐슨은 테디를 1년 전부터 지켜봤는데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으며 옷은 꾀죄죄하고 지저분한 아이라는 것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아이는 호감이 가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실제로 미세스 탐슨은 그 아이의 시험지에 굵고 빨간 펜으로 굵직하게 x 표를 하고는 시험지 상단에다 커다란 "F"자로 점수를 적는 것을 즐기곤 하였습니.. 2004. 11. 20.
부활(復活)은 소생(甦生)과 다르다. 부활(復活)은 소생(甦生)과 다르다. 예수님의 그리 길지 않을 예루살렘에서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복음에 아주 드물게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등장하고, 예수께서 이들과 함께 부활에 관하여 논쟁을 벌인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누구인가? 당시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대항자로서 잘 알려진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기록된 율법, 즉 모세오경만을 받아들여 모세율법의 자구(字句)를 고집하였으므로, 바리사이들이 중시하는 구전(口傳)의 법(法)을 인정하지 않았다. 교의적(敎義的)으로는 영혼의 불멸이나 육체의 부활 및 천사와 영적 존재를 믿지 않았고(마르 12,18; 루가 20,17; 사도 23,18), 오직 부유한 평안만을 추구하였다. 실제로 사제(司祭)들을 포함한 부유층과 귀족계급들이 이에 속하였고(사도 4,1; 5,17).. 2004. 11. 20.
감기가 심한데... 어쩌다가 5시도 안되어 눈을 떴다. 문틈 새로 들어오는 불빛이 보이길래 내다보니, 역시나... 못난 서방과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콜록이며... 며칠 째 아내가 감기로 고생이다. 잦은 기침과... 걱정이다. 몸도 정상이 아닌데... 괜한 걱정이겠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괜히 가슴이 아프다. 이번 감기가 독하다고는 하지만... 역시 면역력이 많이 떨어졌나 보다. 아프기 전에는 감기하고는 거리가 멀던 사람이었는데... 우야꼬???? 오후엔 아내와 막둥이 둘과 함께 처가에 가기로 했다. 월요일에 아내가 서울로 가서 정기 검진을 위한 CT 촬영 등을 해야 하는데 울산에서 출발해서는 오전 검진을 받기가 힘이 들고, 혼자 처가를 들러 서울로 가게 하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고 어른들도 뵙고 인사도 .. 2004. 11. 20.
참으로 ‘보는 자’ 참으로 ‘보는 자’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예리고의 소경에게 광명을 주신 기적사화를 들려준다. 예수님의 일행이 그럭저럭 예리고(예루살렘 북동쪽 36Km 지점)에 당도했다. 예수님의 당도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며, 길에서 구걸을 하던 소경 한 사람도 그 소식을 듣게 된다. 마르코는 이 소경의 이름을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마르 10,46)라고 밝히고 있다. 소경을 앞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나자렛 예수가 왔다는 말만 듣고 일단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는 사람들의 조용히 하라는 꾸짖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큰소리를 질렀다. 소경의 부르짖음이 예수님의 귀에 도달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이미 마음으로 예수를 믿고 있었던 소경은 결국 자신의 믿음으로 광명을 찾는다.(42절.. 2004. 11. 19.
맛과 냄새 등에 관한 말들 고교 연합고사로 20여일 남았다. 책을 뒤적이다 중3 생국 부록에 있는 '맛과 냄새와 관련된 말'들을 정리해 둔 부분을 보다가 우리말이 역시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며 여기 정리해 본다. =================간간하다 : 입에 당기게 약간 짠 듯하다.감칠말 : 음식이 입에 당기는 맛고소하다 : 볶은 참깨나 참기름 같은 맛, 냄새가 난다.구수하다 : 맛, 냄새가 비위에 좋다.느끼하다 : 기름기가 너무 많아 비위가 거슬리다. 달곰삼삼하다 : 조금 달고 삼삼한 맛이 있다.달곰새금하다 : 조금 달고 새금한 맛이 있다.달곰쌉쌀하다 : 조금 달고 쌉쌀한 맛이 있다.달보르데하다 : 조금 연하게 달콤하다.달착지근하다 : 조금 달콤한 맛이 있다. 담박하다 : ① 맛이 산뜻하다. ②아무 맛이 없고 싱겁다.담백하다 :.. 2004. 11. 17.
신뢰 없이는 열매도 없다. 신뢰 없이는 열매도 없다. 오늘 복음은 ‘금화를 맡은 종들의 비유’를 들려준다. 이 비유는 마태오복음의 ‘달란트를 맡은 세 종의 비유’(마태 25,14-30)와 흡사하다. 그러나 두 비유를 잘 살펴보면 많은 차이점이 드러난다. 우선 마태오복음의 비유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21장), 최후의 만찬을 목전에 두고 ‘충성스런 종과 불충한 종의 비유’(24,45-51), ‘열 처녀의 비유’(25,1-13), ‘최후의 심판 비유’(25,31-46)와 함께 발설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는 임박한 종말의 시작과 인자의 재림을 다루는 주제에 전체적으로 편입된다. 마르코복음도 이와 비슷한 위치에서 오늘 복음의 비유에 걸맞은 몇 구절을 기록하고 있다.(마르 13,34-36) 이에 비하여 루가는 오늘 복음의 비유를.. 2004.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