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현재’의 하느님
예수님의 그리 길지 않을 예루살렘에서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성대한 예루살렘 입성이 있었고, 올리브 산 중턱에서 예루살렘의 불행을 예고하셨다. ‘강도들의 소굴’이 된 성전을 정화하신 일로 대사제와 율사들과 원로들과 ‘그럴 권한’에 대한 논쟁과 세금문제에 대한 논쟁도 있었다.(루가 19,28-20,26) 오늘은 복음에 아주 드물게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등장하고, 예수께서 이들과 함께 부활에 관하여 논쟁을 벌인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누구인가? 사두가이파는 기원 전 2세기부터 존재하는 바리사이파, 에세네파와 함께 유대교 파벌 중의 하나로서 예루살렘의 귀족 제관들과 사회의 부유한 기득권층으로 구성된 집단이다.(사도 4,1; 5,17) 정치적으로는 로마제국과의 타협을 통해 현세적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무리들이며, 오로지 현세만을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눈에 보이는 현실이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었다. 따라서 교의적(敎義的)으로는 영혼의 불멸이나 육체의 부활(이사 24-27장; 다니 12,1-3; 2마카 7장) 및 천사와 영적 존재를 믿지 않았고(마르 12,18; 루가 20,17; 사도 23,18), 오직 부유한 평안만을 추구하였다. 당시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대항자로서 잘 알려진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기록된 율법, 즉 모세오경만을 받아들여 모세율법의 자구(字句)를 고집하였으므로, 바리사이들이 중시하는 구전(口傳)의 법(法)을 인정하지 않았다. 내세(來世)에 관한 복음을 전하는 예수에 대하여는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격한 증오를 보였고, 예수를 단죄하고 처형, 사도들을 박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무리들이다.
이렇게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실로 극단적인 예를 들어 예수를 곤욕에 빠뜨리려 하였다. 그들이 내세운 근거는 아들 없이 남편이 죽으면, 그의 아내가 남편의 형제와 결혼하여 대를 잇게 하는 수혼법(嫂婚法)이다.(신명 25,5-10; 창세 38,8) 그러나 사두가이파의 맹점은 내세(來世)를 현세(現世)의 연장으로 생각한 데 있다. 예수께서는 우선 죽은 후에 맞이할 새 세상이 이 세상의 연장이 아니라고 가르치신다. 실제로 일어날 일은 우리의 상상 밖이다. 내세란 현세의 모든 생명질서가 무너지고, 죽음 자체가 완전히 극복되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내세의 부활은 이승의 차원과 전혀 다른 하느님의 영광과 그분의 생명에 하는 것이다.
현세의 질서와 시간과 공간, 즉 물리(物理)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우리가 부활의 차원의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에게는 시간과 공간의 영역이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져 있으나 하느님에게는 오직 현재의 시간과 공간만이 존재한다. 이를 일컬어 ‘순수현재’(純粹現在, pura praesentia)라고 한다. 그분은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시작이 있다면 과거가 있는 것이고, 끝이 있다면 미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이 비록 죽어 과거의 인물이 되었더라도 그들의 하느님이시며, 죽은 이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느님이신 것이다.(출애 3,6)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는 것이다.”(38절) 하느님은 죽은 이들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로부터 찬미를 받으신다. 즉, 죽은 이들은 하느님을 섬길 수 없으며, 오직 산 사람만이 하느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느님을 섬기는 자는 살아 있는 것이며, 하느님을 섬기지 않는 자는 살아 있더라도 죽은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셈이다.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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