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所有)와 위탁(委託)의 관계
오늘 복음에는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말씀들이 서로 모여 있다. 전체적인 이해를 돕는 데는 우선 어제 복음이었던 ‘부정직하지만 약삭빠른 청지기의 비유’를 떠올려야 한다. 그 비유가 오늘 복음의 첫 부분과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청지기의 편법적인 부정직함을 알면서도, 그러나 약삭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슬기로움을 칭찬한 부자주인의 입장을 은근히 동조하시면서, “세속의 자녀들이 자기네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약다.”(8절)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입장에서 청지기가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실직의 위기에 직면한 상태에서 신속하게 자신의 미래를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그의 이러한 행동이 얄밉기도 하고 교활하기도 한 것이다.
청지기가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의 빚을 탕감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미래를 준비한 것은 ‘세속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것’(9a절)과 같은 방법이다.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고 횡령하는 것은 분명히 나쁜 짓이다. 그러나 그가 사람들의 빚을 탕감해 준 것은 선행의 공로를 쌓은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 선행은 공로라기보다는 자신의 미래를 위한 대책이다. 만약 이 미래를 위한 대책이 현세(現世)의 영역이 아니라 내세(來世)의 영역을 위한 것을 의미한다면, 재물을 다 쏟아 부어 마련한 이 대책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9b절) 그러므로 청지기의 부정직함은 접어두고라도, 그의 행동은 곧 심판의 위기에 직면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즉각적인 회개촉구의 모범이 될만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는 청지기의 부정직함이다. 이 부정직함이 오늘 복음의 세속과 재물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13절)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이 말씀에 비웃음을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재물을 통한 자신들의 넉넉한 생활을 그들의 정직함에 대한 하느님의 보상이라고 믿었다. 그들이 야훼 하느님의 전통을 보호하고 전수하며, 율법을 글자 그대로 착실하게 지키는 대가로 재물을 보상받았다고 믿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보상으로 받은 재물의 소유권은 절대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하느님을 잘 섬긴 대가로 받은 재물의 소유권은 주장하지만 재물을 하느님만큼 섬기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웃음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뭐가 다른가? 예수님이 보시기에 재물의 소유권을 자신으로 인정한다는 사실이 곧 재물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과 같다. 그러니 바리사이들의 그런 태도가 ‘하느님께 가증스럽게’(15절)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세속적 재물과 하느님을 철저하게 따로 떼어 생각하고 계신다. 재물은 세속적이며, 부정직함과 온갖 탐욕과 부정부패를 반영하고 있으며, 이것이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흐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재물이 비단 물질적인 부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지상적인 선(善)으로서의 물질은 물론,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건강과 능력, 가족과 직업, 시간과 공간, 영적으로 받은 모든 은총이 다 포함된다. 재물과 하느님의 철저한 구별은 곧 모든 재물이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결국 오늘 복음의 핵심은 소유(所有)와 위탁(委託)의 철저한 구분에 있다. 모든 것의 소유는 하느님께 있다. 우리가 가진 세속의 재물은 곧 사는 동안 관리하도록 하느님에 의해 위탁된 것, 맡겨진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곧 재물과 하느님 사이의 종속적인 관계를 유발시키는 것이다. 세상의 주인은 하느님뿐이시다. 하느님 외에 어떤 무엇도 인간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세속의 재물 또한 하느님의 것으로서 인간은 자신의 삶 속에서 이를 잘 관리하도록 불림을 받은 셈이다. 사람은 적게 맡았던 많이 맡았던 맡은 것에 대한 자신의 소명(召命)과 책임을 잘 완수해야 한다. 여기에는 늘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충실하며, 지극히 작은 일에 부정직한 사람은 큰일에도 부정직할 것이다.”(10절)는 원칙이 적용된다. 맡은 것이 많을수록 비리와 부정부패가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기 때문에 이를 항상 조심하여야 한다. 아울러 이 땅에 기아(饑餓)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고, 재물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며, 인권(人權)을 팔아야 하는 일이 있는 한, 우리는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베풀어 주신 재물의 관리와 위탁(委託)의 소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마음 깊이 깨닫고 뉘우쳐야 할 것이다.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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