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의 인격적 의미
어느 바리사이파 사람이, 그것도 바리사이파의 한 지도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 식사에 초대했다는 이야기는 4복음서를 통틀어 루가복음에만 보도된다. 루가는 사실 세 번에 걸쳐 바리사이파 사람이 예수를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한 일을 보도하고 있다.(7,36; 11,37; 14,1) 예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이 베푸는 식사에 손님으로 가실 때마다 그 자리에 함께 초대받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주셨다. 루가는 오늘 복음의 식사초대가 안식일에 일어난 일로 소개함으로써, 분명히 예수와 반대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을 것을 암시한다. 음식을 잡수시는 예수를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1절) 아니나 다를까 그때 마침 수종(水腫)으로 온 몸이 부어 고통 받는 병자 한 사람이 예수님의 시야에 들어왔다.(2절) 이제 문제는 안식일 법에 관한 문제로 비약된다.(3절)
안식일 법의 기원은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있다.(창세 2,2-3) 이것을 근거로 율법은 안식일에 철저한 파공(罷工)을 규정한다.(출애 23,12; 34,21; 레위 19,3; 23,3; 신명 5,12-14) 예수님 당시에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은 안식일 법과 관련하여 39개의 금지조항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열거하면, 1) 씨 뿌리지 말 것, 2) 밭을 갈지 말 것, 3) 곡식 단을 묶지 말 것, 4) 곡식을 거두지 말 것, 5) 곡식을 타작하지 말 것, 6) 곡식을 까불지 말 것, 7) 곡식을 갈아 가루로 만들지 말 것, 8) 곡식을 찌지 말 것, 9) 채질하지 말 것, 10) 반죽하지 말 것, 11) 굽지 말 것, 12) 털 깍지 말 것, 13) 빨래하지 말 것, 14) 때리지 말 것, 15) 염색하지 말 것, 16) 실 짜지 말 것, 17) 밧줄 끌지 말 것, 18) 두 끈을 만들지 말 것, 19) 두 실을 짜지 말 것, 20) 두 실을 가르지 말 것, 21) 매듭을 짓지 말 것, 22) 매듭(끈)을 풀지 말 것, 23) 바늘로 두 번 깁지 말 것, 24) 두 뜸을 깁기 위해 찢지 말 것, 25) 사슴을 잡지 말 것, 26) 죽이지 말 것, 27) 껍질을 베끼지 말 것, 28) 소금 치지 말 것, 29) 그 가죽을 만들지 말 것, 30) 머리털을 밀지 말 것, 31) 그 것을 깍지 말 것, 32) 두 글자를 쓰지 말 것, 33) 두 글자를 쓰기 위해 지우지 말 것, 34) 집 짓지 말 것, 35) 헐지 말 것, 36) 망치로 납작하게 때리지 말 것, 37) 불을 끄지 말 것, 38) 불을 켜지 말 것, 39)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물건을 옮기지 말 것이다. 사실은 이 조항들만이 전부가 아니다. 이들은 최소한의 조항으로서 이들 보다 더 힘들고 복잡한 육체적 노동은 안식일 규정의 본 의미인 파공(罷工)이 금하고 있다. 어떤 랍비들은 모두 41개의 금지조항을 만들고, 각 조항에 6가지 세칙을 붙여 한껏 복잡하게 만들기도 했다.
따라서 안식일 법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안식일 전날까지 모든 음식을 준비해야 하고, 먼 거리를 걷기 않기 위해 갈 곳에 미리 도착하여 있어야 하며, 거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어야 했다. 참고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신도 안식일 전에 매장되었고(마르 15,42), 여인들도 예수님의 시신에 도유할 향료와 향유를 안식일 전에 마련하였던(루가 23,56) 것이다. 물론 안식일에 밀이삭을 자르는 일(루가 6,1; 마르 2,23-24), 죽음의 위험에 처하지 않은 사람을 도우거나 그 병을 고쳐주는 일(루가 6,6-11; 13,10-17), 물건을 운반하는 일(요한 5,9-10), 긴 여행을 하는 일(사도 1,12) 등은 금지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엄밀히 따져볼 때 제사장들은 안식일 법을 밥 먹듯이 어겼다는 것이다. 안식일이 제사를 준비하고 올려야 하는 그들에게 어느 날보다 바쁜 장날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율사들은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번제물을 준비하는 일’, ‘자기방어’, ‘죽을 위험에 있는 병자를 치료하고 구하는 일’, ‘생후 8일 만에 받아야 하는 할례예식’(창세 17,12; 21,4; 레위 12,3) 등은 별도로 허용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유야 어찌 되었든 바리사이파 사람들도 사람이 죽을 위험에 처하면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만사를 제치고 사람의 목숨을 구해야 하는 것이 율법의 정신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율법의 정신을 다시 세우신다. 즉, 안식일 법보다 사람을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것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은 그 생명의 위독함과 무관하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사람이 법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루가복음에서 안식일 법에 대한 예수님의 새로운 해석을 배웠다.(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병자를 치유함: 6,6-11; 안식일에 회당에서 곱사등이 부인을 치유함: 13,10-17)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행할 기회를 피하는 자체가 악행을 방조하는 것으로 보시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안식일, 일곱째 날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일곱째 날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주일(主日), 즉 일요일을 말한다. 주일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유효한 하나의 표지이다.(창세 2,3) 좋고, 거룩하고, 축복의 날인 일곱째 날, 이 날 하느님께서는 모든 창조를 완성하셨다. 이같이 일곱째 날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여섯 날들을 완성해 주신다. 우리의 모자라는 것이 이 날 하느님을 통해 거룩해지고 충만해지는 것이다. 일곱째 날! 이 날은 하느님께서 아직 당신을 찾지 못했거나 망각해 버린 세상에 하늘을 열어 보이는 날이다. 이 날은 예수님께서 고통과 고독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한 인간에게 삶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그런 날이다. 일요일은 그래서 세상을 위한 하나의 표지요 축복이며, 선물이다. 우리를 이러한 의미에로 초대하고 유인하는 그런 표지인 것이다. 따라서 일곱째 날은 일곱 날들 중 하나의 날이 아니라 인격적(人格的)인 날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는 안식일이 사람과 하느님이 만나는 날이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일(主日)이 우리가 하느님과 영교(靈交)하고 거룩함을 누리고 축복을 받는 날이며, 묵은 것과 죽은 것을 벗어 던지는 부활(復活)의 날인 것이다.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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