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위해...
제2이사야서(40-55장)가 달리 ‘위로의 책’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 책이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40,1) 하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예언자는 바빌론의 귀양살이가 끝나가고 있음을 알고 예루살렘의 기쁨을 미리 내다본다.(40,9) 유배기간은 그들에게 복역기간이었고, 죄벌을 받는 기간이었으며, ‘잃어버린 기간’이었다. 이제 그 기간이 끝난다.(40,2) 예언자는 외친다. “야훼께서 오신다. 사막에 길을 내어라. 벌판에 큰 길을 훤히 닦아라. 모든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깎아 내려라. 절벽은 평지를 만들고 비탈진 산골길은 넓혀라.”(40,3-4) 목자가 양떼에게 풀을 뜯기고, 새끼 양들을 두 팔로 안아 가슴에 품으며, 젖먹이 딸린 어미 양을 곱게 몰고 오듯이, 야훼께서 팔을 휘둘러 원수를 정복하시고 승리하신 보람으로 찾은 백성을 친히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오신다는 것이다.(40,10-11)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요르단강으로, 요르단강에서 예수에게로 구원의 길을 닦고 예수를 예언된 메시아요 구원자로 계시하였던 것이다.(마태 3,1-17; 요한 1,35-36) 예수는 곧 100마리 양 중에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목자이시다. 오늘 복음이 바로 이 사실을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마태오복음 18장은 믿음의 공동체에 대한 설교로서, 구성원 상호간의 형제애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담겨있다. 그 주제들을 요약하면, 겸손, 선도(善導), 상호존중, 자비와 용서 등이다. 가르침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어라(1-5절), 작은이들을 죄짓게 하지 말라(6-9절), 작은이들을 업신여기지 말라(10-14), 형제가 죄를 짓거든 바로잡아 주어라(15-18절), 둘이 함께 내 이름으로 청하면 아버지께서 다 이루어주신다(19-20절), 몇 번이고 용서하라(21-22절), 무자비한 종의 비유(23-34절), 그러므로 진심으로 용서하라(35절)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작은이들을 업신여기지 말라.”(10-14절)는 대목에서 ‘길 잃은 한 마리 양의 비유’(12-14절)만 들려준다. ‘길 잃은 양의 비유’는 ‘잃은 은전의 비유’와 ‘잃은 아들의 비유’와 함께 루가복음에서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에 관한 주제로 다루어진다.(루가 15,4-32) 루가는 이 비유를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들에도 복음을 전하시고, 그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누는 일을 못마땅해 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들려주신 것으로 소개한다. 그러므로 루가의 비유에서 ‘잃은 것’은 세리와 죄인들을 의미하며, 이들의 회개를 ‘다시 찾은 것’에 비유하면서 이 사실을 두고 하늘전체가 기뻐한다는 것이다. 물론 비유의 맥(脈)은 잃은 것에 대한 하느님의 끈질긴 관심과 사랑과 자비이다. 마태오복음에서는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이 공동체에 속해있는 ‘보잘것없는 작은이’에 비유된다. 비유의 결론은 100마리의 양들 중에 아흔 아홉 마리를 그대로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끝까지 가서 찾아내시고 기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본받아 작은이들에 대한 공동체 전체의 각별한 관심과 배려를 표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가난하고 보잘것없고 무능한 이들은 교회 밖에서는 물론이고 교회 안에서도 종종 설자리를 잃는다. 이들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예수께서 간절히 권고하시건만, 교회 안에도 늘 업신여김과 차등과 차별이 존재한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세상에 대하여 가난하고 보잘것없고 무능한 자가 되셨다. 얼마 있지 않아 우리는 이 사실을 구유에서 목격하게 될 것이다. 우리 공동체는 다시금 마음을 모아 하느님의 사랑을 배워야 한다. 하느님의 열외(列外) 없는 사랑, 잃은 것, 상한 것, 구석에 있는 것에 대한 끈질기고 인내하는 사랑, 큰 것보다 작은 것에 더 기뻐하는 사랑, 어떠한 질책이나 책임추궁 없이 다시 찾은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사랑을 말이다. 이것이 하느님의 ‘이유와 조건 없는’ 사랑이며, 구원자 예수께서 못난 우리에게 베푸실 사랑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바로 나일 수 있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세상에 오시는 것이다.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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