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同行)의 의미와 추종(追從)의 의미
예수께서 식사초대를 받으셨던 바리사이파 사람의 집에서(루가 14,1-24)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금 여정에 오르셨다. 이 여정은 예루살렘을 향한 길이고, 죽음을 향한 길이다. 많은 군중이 예수를 동행하였다고 한다. 인생의 여정에 동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기쁨과 보람, 고통과 슬픔, 수고와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서로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까지 동행할 수 있을 것인가? 예수를 따르는 군중은 과연 예수를 어디까지 동행할 수 있을까?
오늘은 예수께서 ‘당신과의 동행’의 의미를 밝혀주신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의 골고타에서 자기 생애의 최후를 십자가 죽음으로 맞이하실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어떤 동행자도 예수와 똑같은 방법으로 십자가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동행자들 중에서 당신을 끝까지 따를 수 있는 추종자들을 얻으려 하시는 것이다. 동행(同行)의 사전적 의미는 ‘길을 함께 가는 것’이다. 길을 함께 간다고 해서 같은 목적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추종(追從)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뒤나 그 뜻을 쫓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추종은 길을 함께 가는 동행의 뜻을 가지면서 선행자(先行者)의 뜻을 끝까지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를 추종한다는 것은 예수와 함께 끝까지 가는 것이며, 예수제자 됨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러므로 추종은 동행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얼마나 어려운지는 복음의 말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오늘 복음이 제시하는 예수추종의 조건은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는 자기부정이다.(26절) 자기부정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것인데, 이는 부모, 처자, 형제자매, 친구까지 미워하는 것으로 비약된다. 둘째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27절) 여기서 강조되는 점은 ‘자기 십자가’이다. 다른 누구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다.
우리가 대학교육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시험, 즉 수능시험을 치른다고 할 때 쳐야할 과목을 크게 일반 공통과목과 특수 선택과목으로 나누듯이, 예수추종(제자 됨)의 조건에도 공통(共通)과 선택(選擇)이 있다. 공통에 해당하는 것이 첫 번째 추종조건인 자기부정이다. 선택에 해당하는 것이 두 번째 조건인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물론 십자가라는 말은 같지만 그 십자가의 내용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당신을 추종하려는 누구에게나 같은 방법을 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으신다. 망대를 지으려는 사람이 그만한 비용이 있는가를 곰곰이 따지거나, 일 만의 군사로 이 만의 군사와 전쟁을 치르려는 임금이 승산(勝算)이 없다고 판단되면 즉각 상대방 임금에게 화평(和平)을 청하듯이(28-32절), 예수추종의 기본정신은 자기부정이지만, 추종의 방법은 다양하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요구하시지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시지는 않으실 것이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이 강조하듯이 추종의 기본정신인 자기부정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리는 것’(33절)으로 요약된다. 가진 것을 모두 버리라고 해서 버릴 것을 그저 물질적인 재물이나 재산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주님을 따르는데 무엇을 버려야할 지를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명예와 권력, 고집과 아집, 이기심과 욕심, 위선과 착취, 취미와 재미 등, 때로는 정말 재물과 재산, 내가 가장 아끼는 소유물, 부모나 형제자매, 친구가 될 수도 있다. 무엇이든 그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달고 예수추종에 걸림돌이 된다면, 사탄과 악습의 굴레에 사로잡힐 것이 된다면, 과감하게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자유롭게, 그리고 각자 나름의 십자가를 지고 진정 예수를 추종할 수 있을 것이다.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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