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좋은 책도 있을까 싶으네요. 저 따분한 성경책이, 읽어도 읽어도 마른 껍질을 씹듯이 재미없는 책이 이렇게도 흥미진진한 책이 될 수 있다니. 딱딱하게 마른 나무 껍질을 깎아내면 거기 향긋한 물기가 있기 마련 아닙니까? 그런데 그 물기는 거꾸로 거꾸로 스며 올라가는 물기거든요. 거꾸로 올라가서 잎을 싱싱하게 돋혀 내고 고운 꽃을 피우고 사랑처럼 노래처럼 살구, 앵두, 자두를 열게 하는 물기거든요.
나는 일흔이 다 되도록 성경을 꽤나 많이 읽었고 성경에 관한 책도 많이 읽은 셈인데, 이렇게 성경의 숨은 뜻을 따뜻한 숨결로 숨쉬게 해주는 책은 일찍이 읽어본 일이 없었던 것 같아요. 내가 써보고 싶다고 마음으로 생각하던 글을 나보다 훨씬 더 예민한 감성으로 잡아, 나보다 훨씬 더 흐르듯 날카로운 필치로 써내려갔구만요. 심술이 날 정도로.
돈밖에 모르는 자캐오의 지옥과도 같은 절망, 거기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숙명적인 과정을 그려나간 필치도 실감이 나지만, 그의 귀에 들어온 예수의 모습을 읽어 볼까요?
"그러나 그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는 대신 찾아갈 집이 가는 데마다 있었다. 그는 흐르는 물과 같았다. 자기보다 더 낮은 곳이 있으면 시각을 다투어 그리로 내려갔다. 그리하여 언제나 그는 맨 아래에 있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예수의 첫인상은 이런 것이었네요.
"그렇다. 저 사내는 아무것도 꺼리지를 않는구나! 거침이 없어! 저 붉은 얼굴과 붉은 맨손을 보면 알 수 있지. 저 사내는 마치 사람의 모양을 한 자유의 모습이군. 자유!"
새로운 인생에 도취되어 새벽 하늘에 별빛이 이울기까지 계속된 축제도 끝나고 곯아떨어진 예수의 얼굴에서 자캐오는 이런 말을 듣는다는거군요.
"무엇을 그리 움켜잡고 있었는가? 불쌍하게도! 놓아버려, 모두 놓아버리는거야. 그리고 하늘이 주신 대로 살아가게. 그 순간 우리를 떠났던 것들이 모두 돌아온다네. 이게 바로 세상 사는 맛이지! 허허허..."
사마리아의 한 여인. 돈을 받고 딸을 팔아먹는 아버지라는 남자. 이것으로 그는 어떤 남자도 사랑할 수 없게 되는거죠. 그래서 다섯 남자의 노리개로 전전하다가 지금도 검불 같은 사랑도 없는 남자와 같이 살아가는 여자. 그가 예수에게서 들은 말씀.
"어여쁜 여자여, 하느님의 딸이여, 사람들이 그대를 개처럼 여긴다고 그대 자신까지 그대를 개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오. 사람들이 그대를 물건처럼 취급하거든 그대는 그대를 천사처럼 받들구려. 사람은 남이 만들어주는 대로 정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든는 대로 정해지는 법이오.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 봐요! 그대에게 한 방울의 자비를 바라는 목마른 사람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니. 이는 하느님이 언제나 그대 곁에서 목마르시기 때문이오. 사람이 짓는 죄 가운데서도 가장 고약한 것은 남을 버리는 것보다 자기를 버리는 것이라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을 버리는 것이면서 또한 하느님을 버리는 것이니까.
철저하게 사람의 아들로 살아간 예수에게서 사람들은 하느님의 아들 모습을 보았던 것 아닙니까? 그리하여 하느님의 아들이 되어버린 예수를 작가 이현주는 다시 사람의 아들로 그려주는군요. 그렇게 해서 오늘 하느님 없는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의 눈에 하느님의 아들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네요.
어쩌면 이렇게도 생생하게.
86년 5월 7일 문익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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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연히 맏상주 녀석 책꽂이를 뒤지다 발견한 책인데, 표지 안쪽을 보니 오래 전 대현중학교 제자로 본당 신학생인 유연창 베드로군(?)이 큰 녀석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 메모된 내용은 "† 예수, 나의 행복"...
책을 읽다보니 지금 대림 시기에 읽기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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