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2,1-11 (카나의 혼인 잔치)
주님과 함께 세상이라는 흥겨운 잔치를 만들어요
아무리 살기 힘들다고 해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잔치 마당입니다.
하느님께서 생명을 낳고,
이 생명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어
오순도순 더불어 살아가도록 만드신 기쁨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잔치 마당에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기쁘게 어울려 함께 보듬으며
잔치를 더욱 흥겹게 만들어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세상이라는 잔치 마당에 참여하는 우리는
알콩달콩 살 맛 나는 기쁨에 절로 어깨춤을 추기도 하지만,
때로는 도대체 이게 무슨 잔치인가 싶은 마음을 가집니다.
아름답고 좋은 것으로 넘쳐날 때
잔치는 말 그대로 잔치이며,
함께 하는 이들 모두 흥겹게 잔치에 녹아들어갑니다.
하지만 무엇인가 부족하다 느껴지면
잔치의 의미는 사라지고,
이내 온갖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혼인잔치에 술이 떨어지면
이내 잔치의 흥이 깨져버리듯이,
세상이라는 잔치 마당에서
서로를 보듬어 안는 사랑이 메말라가고,
서로에 대한 조건 없는 믿음이 부족해지고,
서로를 하나로 이어주는 희망이 부서져 버린다면
세상은 더 이상 잔치가 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흥겨운 잔치,
아름답고 소중하게 가꾸어 더욱 흥겹게 만들어야 할 잔치,
이 세상은 안타깝게도
항상 부족한 무엇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하느님께서 과연 잔치를 베푸신 것인지,
하느님께서 과연 이 잔치에 함께 하시는 것인지,
때로는 원망으로, 때로는 불신으로
하느님께 하소연하기도 합니다.
제발 잔치를 잔치답게 만들어 달라고 말입니다.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세상이 점점 어두워질수록,
내 탓 모르는 우리는 하느님을 원망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아름다운 음성이 들려옵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우리의 뜻과 생각을 하느님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생각에 겸손하게 우리를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믿음 가득한 어머니의 말씀에
예수님께서는 잔치의 부족함을 채워주십니다.
단순히 부족한 그것을 채우실 뿐만 아니라,
더욱 맛깔나게, 더욱 흥겹게 잔치를 만드십니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다시 세상이라는 잔치 마당을 생각합니다.
분명 우리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분명 우리의 믿음을 깨뜨리는 것이 있습니다.
분명 우리의 희망을 부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것,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널려 있습니다.
이 세상을 참된 잔치로 만들기 위해
채워져야 하는 부족함이 있고,
사라져야 하는 걸림돌이 있습니다.
모든 이를 위해 마련하신 세상 잔치가
몇몇 가진 자들만의 축제로 변질되고,
태평성대 찬양하는 권주가에
피눈물 흥건한 신음소리가 묻히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죽음의 마당이 되어버린
소수를 위한 잔치 마당 언저리에서
마지못해 어색한 춤을 추지도
떨어지는 떡고물에 침 흘리지도 않습니다.
분명 당신의 때에
모든 이를 위한 참된 잔치를 베푸실 분을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깊고 깊은 미움의 골을 사랑으로 다시 채우시는 분을,
불신으로 터진 상처를 믿음으로 싸매주시는 분을,
절망의 늪을 헤매는 우리를 희망으로 일으켜주시는 분을,
그릇됨을 올바름으로 다시 세우시는 분을
비록 보잘것없지만 온 삶으로 믿기에
우리는 그분의 아름다운 부르심에
언제나 “예, 당신의 뜻대로!” 라고 응답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신 사람들이
게걸스런 탐욕에 취해 돈을 섬기고
같잖은 한줌 권력을 움켜쥐려 양심을 팔아
스스로 존엄한 가치를 진흙탕에 내던지고
‘소박맞은 여인’이나 ‘버림받은 여인’처럼
제 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시고 선하시며 의로우신 당신과
‘혼인한 여인’처럼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당신께서 알려주신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길을 떠나
헤매다 지쳐 쓰러져 망신창이가 되어버린 이들을
다시금 깨끗하게 씻어주시고 정갈하게 입히시어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당신께서 지으신 이들을 품에 안는 것이요,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당신 품에 안으신 이들로 말미암아
당신과 당신께서 빚으신 세상과
이 세상을 돌보라 사명을 맡겨주신 사람이
갈림 없이 하나였던 첫 창조 때의 기쁨을
다시금 누리시는 것입니다.
(제1독서, 이사야 62, 4-5 참조)
하느님께서는
곱고 아름다운 당신의 뜻을 이루시려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기꺼이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우리가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갖가지 성령의 은사를 부어주십니다.
(제2독서, 1코린 12,4-11 참조)
우리는 세상이라는 잔치를 더욱 흥겹게 만들도록
우리가 감히 원할 수조차 없는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랑스러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 약하다고 주저하지 맙시다.
우리 부족하다고 망설이지 맙시다.
우리 신명나는 잔치를 벌이기 위해
세상 깊숙이 아직은 잔치를 즐길 수 없는 벗들에게
힘차게 나아갑시다.
<의정부 교구 교하본당 상지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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