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21,25-28.34-36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깨어 있어라)
성당 문이 열리고 미사를 마친 사람들이 썰물 빠지듯 한꺼번에 쏟아져 나옵니다. 말쑥한 차림의 이들 사이에 아주 허름한 차림의 볼 품 없는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느 누구 하나 이 사나이에게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피곤에 지친 이 사나이는 서 있을 기력조차 없어 보입니다. 미사를 마친 사제가 제의를 벗고 나서 성당 마당으로 나옵니다. 신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사제의 시선의 어느덧 어느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았던 허름한 차림의 그 사나이에게 머뭅니다. 사제는 이 사나이를 본 순간 얼굴빛이 하얗게 변합니다. 사제가 쏜살같이 사나이에게 달려가 소매를 잡아끌다시피 하여 사제관으로 데리고 갑니다. 사제관에 들어서자마자 사제가 사나이 앞에 무릎을 꿇고 애걸하다시피 말을 합니다.
“주님, 지금 여기에 나타나시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 식대로 잘 꾸려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무슨 평지풍파를 일으키시려고 이곳에 오셨습니까? 제발 하늘로 돌아가 주십시오. 우리가 지금처럼 잘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가 주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오시지 마십시오.”
허름한 차림의 볼 품 없는 한 사나이, 세상을 돌아보시고 흩어진 이들을 모아 하느님 나라를 다시 세우시려고 오신 예수님께서 씁쓸한 표정으로 한마디 말을 남기시고 홀연히 사라지십니다.
“알았네. 잘 있게.”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 청년활동을 할 때에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물론 사실이 아니라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 어서 오십시오.’ 라고 들떠서 외치고 있지만 정작 마음으로는 주님께서 오시는 것을,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가 쌓아 놓은 온갖 탐욕과 불신과 증오의 탑을 허물고 새 사람으로 변화시켜주시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날,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이 나타날 것입니다. 땅에서는 사납게 날뛰는 바다 물결에 놀라 모든 민족이 불안에 떨 것이며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안전하게 받쳐 준 온갖 재물과 지위와 인간적인 힘은 그 위력을 잃고 마치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과 같은 처지에 놓일 것입니다. 솔직히 두렵습니다. 그래서 입으로는 주님이 오시기를 기도하면서도, 내심 지금의 생활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면 분명 우리 전 존재를 뒤흔들어 놓으실 것입니다. 아니 주님께서는 이미 신앙인들 안에 들어오시어, 삶 전체를 뒤흔들어 놓고 계십니다. 현실과 복음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도록 만드십니다. 이기심과 집착으로 물든 삶에 안주하려는 이들을 나눔과 섬김의 삶으로 이끄시고자 복음이라는 채찍으로 내리치십니다. 아픕니다. 이 아픔에서 벗어나는 길은 삶을 주님의 뜻에 따라 완전히 바꾸는 것이지만, 이 길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과, 하느님 나라와, 주님과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현실에 타협하는 길을 걸어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대림 시기를 시작하면서 ‘주님, 어서 오십시오. 이 몸이 주님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라는 익숙한 기도를 다시 생각해봅시다. 진정으로, 입으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이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주님, 어서 오십시오. 이 몸이 당신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라는 기도가 입 밖으로 흘러나오지만, ‘주님, 오지 마세요. 거기 그냥 계세요. 괜히 오셔서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 마세요. 당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고 책망하시려거든 그냥 거기 계세요. 적당히 나름대로 살아가겠습니다.’ 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그리고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편안함보다는 오직 복음에 따라 복음을 선포하는 삶의 기쁨을 선택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기를 주님께 청합시다. 나 혼자의 의지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삶이기에 주님께서 제 안에 오셔서 함께 하셔야만 합니다. 이제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 자신을 송두리째 변화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희망하면서 기도합시다.
“주님! 어서 오십시오.”
<의정부교구 교하본당 상지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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