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 7살 때, 토성국민학교 입학 전에 충무국민학교 후문 쪽, 초장동에 6가구 한지붕 단칸방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살던 동네로 기억 속엔 고운 한복 차림의 여인들과 꽤 너른 적산가옥으로 다다미방에서 살았던... 발코니에서 4·19 쯤 되는 큰 데모 같은 사건도 목격, 사하라 태풍이었을 수도 있는 엄청난 바람, 길에서 연탄재를 주워 먹었던 기억도... 後에 십이지장충? 채독벌레? 증상(?)이라 들은 것 같기도...
충무동은 이전에 완월동(玩月洞)이라 불렸다. 완월동은 희롱할 완(玩), 달 월(月) 자를 써서 '달을 희롱하는 동네'라는 아름답지만 ‘야한’ 은유를 담고 있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이 부둣가에서 가까운 이곳에 공창제(公娼制)를 시행했던 곳이었다. 그때부터 이곳에는 허가 받은 성매매업소들이 들어섰다. 해방 이후에도 업소들은 없어지지 않고 영업을 계속했다. 1982년 완월동이란 명칭이 성매매 집결지 이미지가 강하다는 주민들의 강력한 요구로 과거 완월동1가는 충무동2가에 포함되고 완월동 2가는 충무동3가에 포함되어 이제 완월동은 충무동으로 동명이 바뀌었다. 하지만 명칭이 바뀌었어도 충무동 2, 3가는 여전히 법으로 금지된 성매매가 이뤄지는 성매매업소 집결지, 즉 완월동으로 남아있다.
완월동은 날이 어두워지면 살아난다. 분홍빛 전등으로 길을 밝히고 업소 안에서는 여성들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행인들에게 가게로 들어오라 손짓한다. 업소 밖에서는 40~60대의 마담들이 손님들의 손, 가방끈 등을 잡고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분홍빛 전등이 길을 매울 때면, 남성들은 혼자 아니면 여럿이 이곳을 찾아온다. 이때부터 길가는 마담들의 호객 소리로 가득 찬다. 마담들은 “아가씨들이 보고 있잖아, 눈길이라도 줘”라고 말하며 길가에 서성이는 남성들을 가게로 끌어들인다.
일상다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