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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사항

수상한 휴대폰 교체와 사법체계 불신 [아침햇발] 류이근기자

by Oh.mogilalia 2025. 10. 11.

출처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22567.html#ace04ou
류이근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이 지귀연 부장판사 향응 접대 의혹을 제기하며 지난 5월19일 공개한 사진. 지 부장판사(가장 오른쪽)가 동석자 두명과 앉아 있다. 민주당 제공

부모는 둘 다 의사였다.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사내는 종아리 한쪽이 크게 부었다. 걱정됐는지 부모는 연신 전화를 돌렸다. 뭔가 알아보는 눈치였다. 이따금 들리는 대화를 조립해보니 아이를 맡은 주치의가 ‘믿을 만한 의사’인지 알아보고 있었다. 한참 뒤 부부는 결론을 내린 듯 보였다. “괜찮은 친구 같다니까 한번 맡겨보자.”
10여년 전 딸아이가 아파 입원했을 때 병실에서 목격했던 일이다. 아픈 자녀를 맡은 의사가 실력이 있길 바라는 마음은 똑같겠지만, 사실 그때 놀란 건 의사도 의사를 믿지 못하는 야릇한 현실이었다.

지귀연 판사를 보면서 그때 일이 다시 떠올랐다. 25년 동안 취재하면서 특정 형사 사건 재판장의 이름을 거의 온 국민이 알게 된 경우도 처음이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을 풀어줄 때 기이한 법 해석만큼이나 나중에 드러난 그의 행동은 더욱 이상했다. 윤 전 대통령이 구속 취소를 청구한 날, 지 판사는 하필 6년 동안 쓰던 휴대폰을 최신형 모델로 바꿨다. 이어 6분 만에 기존 휴대폰으로 교체했다가 다음날 새벽 다시 전날 산 최신형 모델로 바꿨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 판사의 접대 의혹을 제기한 뒤 그는 석달 만에 같은 방식으로 다시 한번 휴대폰을 교체한다.

처음에 이 기사를 보면서 눈을 의심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석연찮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해서 무엇을 숨기고 싶었을까? 이쯤 되면 ‘뭔가 구린 게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의심하지 않는 게 되레 비합리적이다.

법정에서 피고인을 향해 ‘증거 인멸’이란 엄한 잣대를 들이대는 판사의 행동이라고 보기엔 낯 뜨겁다. 수상한 휴대폰 교체는 만일을 대비하기 위한 최선의 방어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법정을 더욱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런 그를 엄호하는 법원 수뇌부는 사법부의 신뢰를 더욱 추락시켰다.

어쩌면 지 판사 자신조차 형사사법시스템을 제대로 신뢰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그의 말마따나 아무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자신의 휴대폰이 검찰의 손을 거쳐 법정에 증거로 제출되는 과정에서, 휴대폰에 담긴 정보들이 어떻게 활용될지 아무도 믿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지난 5월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준비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지난 5월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준비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불법 계엄 선포 이틀 뒤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 한때 권력 실세 넷이 모였다. 법무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 민정수석 그리고 법제처장. 이들은 왜 모였을까? 친목 모임이란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상한 모임이 세상에 알려지자 약속이나 한 듯 모두 휴대폰을 바꿨다. 넷 다 법조인이다. 그중 셋은 검찰, 하나는 법관 출신이다. 자기방어라 할 수 있지만, 이들이 세금으로 월급을 받아가며 사법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비난을 무릅쓰고 휴대폰에 담긴 증거를 인멸하는 까닭은 은밀한 권력 행사나 때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거래’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당당하다면서도 자신이 쓰던 휴대폰이 사법체계의 다른 집행자의 손에 들어가는 것은 한사코 피하려는 까닭은 이들조차 사법시스템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 압권은 윤 전 대통령이다. 법원이 발부한 영장의 집행을 10여일가량 경호처를 방패 삼아 불응하면서 그가 보인 엽기적인 행태는 검찰총장으로서 한때 형사사법시스템의 한 축을 이끌었던 이의 행동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계엄 실패 뒤 그는 휴대폰을 교체하고 또 비화폰 기록도 삭제했다. 수사를 받기 시작한 뒤로 그는 공공연히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단지 지금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부리는 억지일까? 그보다는 내부자조차 별로 신뢰하지 못하는 형사사법시스템의 현실을 보여주는 꽤 오래된 이야기의 파편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게 아닐까. 검찰총장을 지낸 그도, 판사인 지귀연도 신뢰할 수 없는 사법체계를 시민들에게 어떻게 믿고 또 승복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겨레가 지난 5월 한국정당학회와 함께 벌인 조사 결과를 보면 헌법재판소와 행정부 등 6개 국가 기관 가운데 법원은 밑에서 두번째로 신뢰도가 낮다. 꼴찌는 예상대로 검찰이다. 형사사법시스템의 신뢰는 바닥이다. ‘사법 독립’이란 방패 뒤에 숨어 단일 대오를 유지하는 데만 집중할 게 아니라, 더 무너지지 않도록 신뢰 회복을 꾀해야 한다. 지금은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해 사과하거나 책임지는 자가 아무도 없다. 사법이 신뢰를 잃으면 피해는 결국 시민의 몫이다. 또 온전한 민주주의의 회복도 어렵다.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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