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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사항

CBS칼럼 [칼럼]조희대 대법원의 '원님 재판'

by Oh.mogilalia 2025. 5. 3.

대법원은 법률심이다. 법률 적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이에 반해 제1심과 2심은 사실심이라 부른다. 항소심까지는 증거 평가를 통해 사실 관계를 판단하며 유무죄를 결정한다. 생중계를 통해 지켜본 대법원 재판은 법률심이 아니었다. 1심과 2심에 이어 3심이지만 또다른 연속적인 사실심이었다. 대법원장 조희대는 판결문에서 주문으로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판결문 그 어디에도 파기환송 결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법률 적용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나 설명은 없다. 사실심리 결과만 쭉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법률심'이라는 위상이 스스로 부끄럽고 '사실심'과 뭐가 다르냐는 비판은 의식했는지, "원심의 법리 오해가 있었다"며 마치 법률심인양 뚜껑만 살짝 얹어놓았다.

대한민국 사법사에서 이재명만큼 유니크한 운명을 경험한 정치인은 없다. 그는 대법원에서 두 번의 전원합의체 선고를 받았다. 두 번 다 생중계 됐다. 대법원에서 같은 죄목으로 그것도 불과 5년 만에 심판을 두 번 받았다. 자신이 스스로 자초한 것인지, 아니면 정적들의 집요한 '이재명 죽이기'인지 독자 각자가 판단할 몫이지만 사실이 그러하다. 부정비리가 아닌 공선법상 250조 1항의 허위사실공표의 '행위' 조항을 갖고 사법의 심판 굴레에서 지독하게 조리돌림 당한 정치인의 유별난 운명이라 해야겠다.

2020년 7월, 이른바 '친형 강제입원 사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보자.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허위사실 공표조항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앞세운 판례를 남겼다. 선거 과정에서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활발한 토론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없으므로 표현의 자유, 특히 공적·정치적 관심사에 대한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헌법상 권리로서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 판례는 그 이후 하급심의 판단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조희대 대법원은 이 판례를 완전히 뒤집었다. 이들은 "민주주의에서 자유로운 의견 표현과 토론이 중요함을 인정하지만,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는 거짓말까지 보호할 수 없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허위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고 보다 중요한 핵심은 '유권자의 마음 즉 일반인들의 생각'이라고 판례를 변경했다. 허위사실 여부를 판단하는데 있어 두 기준은 양립적인 가치들이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두 가치가 충돌할 때이다. 선거에서 후보들은 과열된 공방을 수시로 벌인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발언은 때로는 우발적이고 때로는 고의적이다. 따라서 정치인들의 말은 때로는 명백한 허위사실로 판정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발언들은 중의적이거나 다의적이며 맥락에 따라, 또는 지지 여부에 따라 용인될 수도 있고, 반대측에서는 고약하다며 처벌을 요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재명의 "조작한 거죠"라는 발언이 그렇다. 이 발언은 전형적인 '동문서답형' 답변이다. 말의 습관은 그 사람의 화법이나 스타일, 캐릭터에 따라 모두 다르다. 정치인 발언에 대한 해석은 각자의 몫일 때가 허다하다. 이 모두를 일반인의 관점에서 처벌하기로 한다면 정치인 누구도 논쟁하거나 자기 정견을 솔직히 발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표현의 자유와 유권자의 판단 기준이라는 두 잣대는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두 가치가 서로 충돌하며 보완적인 것은 선거운동의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 법이 개정된 이래 그런 논란이 수없이 있었고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이 공선법상 허위사실공표 조항은 기소권자인 검사의 재량이 지나치다는 논란이 많다. 허위사실공표상 '행위'에 대한 처벌은 매우 주관적이며 사람에 따라 완전히 상대적으로 판단이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검사가 자의적·선택적으로 수사해서 기소한다면, 특히 그것이 검사 출신 대통령의 상대 정적이라면. 그 정치인의 발언의 진실과 맥락, 그리고 행태는 괘씸죄의 처벌대상이 된다.

바로 여기에 조희대 대법원의 중대한 잘못이 있다. 어차피 '행위'를 판단함에 있어 두 가치가 충돌한다면 어느 가치에 방점을 둘 것이냐는 중요한 판례가 된다. 조희대 대법원은 '표현의 자유'보다는 '일반인이 느끼는 감정'으로 사실상 판례를 변경했다. 이는 실제적으로 5년 전의 판례를 뒤집는 행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례를 변경한다"는 선언을 하지 않았다. 전원합의체를 열어 5년 전 판례를 사실상 깨놓고도 판례 변경을 선언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법리적으로 판례를 뒤바꿀 만한 사정 변경을 내놓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희대 대법원의 판결은 정치 행위라고 해야 한다. 그냥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없다는 선언일 뿐이다. 5년 만의 판례변경이라면 사정 변경에 대한 법리나 논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최고법원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딱 떨어지는 법리가 없다면, 적어도 5년 만에 정치적 환경이 변해서 판례를 바꾸는 것이 옳다든지, 아니면 갈수록 정치공방이 가열돼 정치인들의 발언 행위 또는 정치문화를 선진화하기 위해 법원의 개입 확대가 맞다든지, 그래도 무언가 주먹구구라도 불가피한 사정을 대법원은 국민들에게 설명했어야 한다.

선거에서 허위사실 공표죄는 후보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조항이다. 정치인들 태반이 이 조항으로 처벌 받는다. 더불어 검사의 선별적 기소권까지 복잡하게 얽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란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조희대 대법원의 판결로 허위사실공표상 행위 조항은 진흙탕 속에 빠지고 말았다. 어느 전원합의체는 표현의 자유에, 어느 전원합의체는 일반인의 관점으로 판단한다면, 그야말로 중구난방이다. 이거야말로 '원님 재판'이요, '사또 재판'인 것이다. 여러 사람이 봐서 다의적으로 해석된다면 그냥 "다의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면 된다. 그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조희대의 대법원은 최고 법원 역할을 포기하고 또 하나의 '정치 집단'임을 과시했다. 사법 쿠데타를 떠나 국회 제 1야당 소속 대통령 후보의 정치생명을 자신들이 가진 사법 권한으로 끊겠다고 작심한 것이다. 그들의 파기환송 결정은 이재명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법을 가장한 조희대 대법원의 정치적 신념이다. 그 진실을 "원심의 법리 오해가 있다"는 뚜껑 아래 숨겼을 뿐이다. '일반인의 관점'이라는 비루한 해석으로 최고 법률심이라고 하는 저의가 낱낱이 확인됐다.

CBS노컷뉴스 구용회 논설위원
출처 : https://m.nocutnews.co.kr/news/6334276?utm_source=naver&utm_medium=navernewsstand&utm_campaign=20250503120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