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내가 드리는 기도는...
오늘 복음의 ‘과부의 끈질긴 간청을 들어주는 거만한 재판관의 비유’는 루가복음에만 있는 고유사료이다. 비유의 소재는 루가가 즐겨 주제로 삼아 보도하는 기도에 관한 것이다. 그것도 인내와 끈기를 동반한 기도의 자세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 복음의 중요한 점은 비유자체의 이야기에 있다기보다는 언제나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라는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격려에 있다. 그것은 오늘 복음이 기도에 대한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라 종말(8b절)을 대비한 유비무환의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비유의 내용처럼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언제나 기도하며 용기를 잃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도하는데 있어서 얼마만큼 인내와 끈기를 가져야 하는 것인가? 오늘 복음에서 과부의 끈질긴 간청을 들어주는 거만한 재판관의 비유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으로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신 후에 성가실 정도로 끈질긴 친구의 청에 빵 세 개를 내어주는 비유(11,1-13)를 상기시킨다. 성가실 정도의 끈질긴 간청을 어제는 친구가 들어주고, 오늘은 거만한 재판관이 들어줄지언정 내일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8b절)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쉽게도 예수께서는 종말을 기다리다 지쳐 이미 믿음을 포기한 사람들을 내다보시고 계신 것이다. 따라서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간청하기를 수도 없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염치 불구하고 끝까지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11,9)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인내와 끈기를 동반한 기도뿐이다.
이미 지나간 복음에서 인자의 재림과 종말에 관한 표징들이 언급되었다.(17,20-37) 노아의 홍수(창세 6-7장) 때나 소돔과 고모라의 최후(창세 19장)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 그리고 ‘여기’라는 일상(日常) 안으로 종말이 들이닥칠 것이 분명하다. 일상 안으로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종말을 피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더욱이 그 날이 언제가 될지를 모르고 살아간다면 다리를 펴고 잘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잃지 말고, 언제나 기도하되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하라는 것이다. 사실 종말의 ‘그 날’이 언제일지 정확히 안다는 것도 모르고 있는 만큼 불안하고 힘든 일이다. 알고 있다면 그 날을 향하여 한 걸음씩 다가서는 두려움과 각박함, 그야말로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찬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고, 모르고 있다면 넉넉함과 막막함의 엇갈린 긴장으로 불안한 인생을, 그래서 지치고 쉽게 포기할 수도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그리고 ‘여기’에서 ‘그 날’을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희망을 가지고 ‘오늘’ 기도하는 사람은 늘 기도하는 사람이다.(로마 12,12; 골로 4,2; 1데살 5,17) 우리들 가운데 고통을 받거나 죄를 지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위해 ‘오늘’ 기도해 주어야 한다. 올바른 사람의 기도는 ‘오늘’이 가기 전에 바로 효과가 있을 것이다.(야고 5,13.15-16) 성령의 도우심으로 ‘오늘’ 기도하는 사람은 믿음의 터전 위에 스스로를 세우는 것이다.(유다 1,20) 그것은 하늘나라의 원로들이 향이 가득 담긴 금으로 된 대접을 가지고 어린 양 앞에 엎드리기 때문이다. 그 향은 곧 ‘오늘’ 우리가 바친 기도이다. 그 때 대천사가 금향로를 들고 와서 ‘오늘’ 우리가 바친 기도를 향에 섞어 향로에 넣고 황금제단에 태워 올린다. 그러자 대천사의 손으로부터 ‘오늘’ 우리가 바친 기도를 태운 향의 연기가 하느님 앞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다.(묵시 5,8; 8,3-4)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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