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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

양심 - 내 마음속에 있는 내 것이 아닌 마음

by Oh.mogilalia 2004. 11. 12.

공관복음이 모두 보도하는 예리고의 소경치유사화(18,35-43)에 이어 루가는 오늘 단독으로 ‘자캐오의 구원사화’를 전하고 있다. 예리고는 요르단강 서쪽, 예루살렘 북동쪽 36Km 지점, 요르단강이 사해(-395m)에 합류하는 북서쪽 15Km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지중해의 해수면보다 250m 낮은 아주 비옥한 땅이었다. 예수님 시대의 팔레스티나 지도를 보면 예리고는 사마리아, 베레아, 이두매아 지방을 서로 이어주는 경계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유다지방의 수도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중요한 관문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예리고에는 지방간의 교역을 감시하면서 세금을 징수하는 많은 세관들이 있었고, 오늘 복음의 주인공인 자캐오는 이들 세관들을 모든 관장하는 세관장으로서 돈 많은 부자였다는 것이다.


육체가 지나친 복을 누리면 그에 비해 영혼이 고갈되는 법, 자캐오는 돈 많은 부자로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릴 수는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늘 불안한 삶을 살아야 했다. 당시 세관원은 지방영주로부터 관세 징수권을 위임받은 민간인들로서 계약에 따라 보수를 받았다. 그러나 세관원은 이방인들과 자주 접촉해야 하고 개별적으로 지정액 이상의 관세를 매겨 부당하게 치부했기 때문에 대부분이 양심을 속이는 죄인 부류에 속해 있었으며, 정직하다 하더라도 직업상 죄인 취급을 받아야 했다. 따라서 유대교의 신앙을 제대로 따르고 올바로 살기 위해서는 이 직업을 버려야 했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 자캐오가 예리고의 모든 세관들을 관장하는 세관장이었다면 그가 유대인들로부터 얼마나 큰 죄인으로 취급받았을 것인지는 가히 짐작이 간다. 


그런데 오늘 그에게도 구원의 날이 들이닥쳤다. 예수께서 그를 만나 주신 것이다. 물론 키가 작은 자캐오가 군중에 둘러싸인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해서 자캐오는 예수께서 지나가실 길목을 미리 잡아 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가 있었던 것이다. 자캐오의 모든 처지를 한눈에 알아보신 예수께서 오늘 그에게 구원을 선사하신다.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5절) 예수께서 ‘오늘’이라고 말씀하시면 인간의 역사 안에 분명히 새롭고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루가복음에만도 이러한 장면이 여러 번 있다. “오늘 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다.”(2,11)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4,21) “오늘 이 집은 구원을 얻었다.”(19,9)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23,43) 


예수님을 만난 자캐오에게 ‘오늘’은 구원의 날이지만, 오늘의 표징을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불평과 불만의 날이 될 수도 있다.(7절) 그렇다고 구원의 ‘오늘’이 아무에게나 선사되지는 않는다. 죄인으로 취급받았고, 또 그래서 죄인일 수도 있는 자캐오처럼 재물의 사회 환원과 부당한 착취에 대한 보상(8절)이 선행(先行)되어야 구원의 ‘오늘’이 선사되는 것이다. 즉, 회개가 하느님 구원의 선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자캐오가 자기 재산의 반을 사회에 환원하고 부당한 착취에 대한 4곱절의 보상을 다짐하는 회개와 회심을 불러일으킨 사건은 ‘그의 노력에 의한 예수와의 만남’과 이로 인해 ‘예수께서 그의 집에 머문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신자든 신자가 아니든 인간은 누구나 양심(良心)을 가지고 있다. 양심이 무엇인가? 이는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자기의 것이 아닌 마음이다. 자캐오도 이 마음 때문에 늘 괴로웠던 것이다. 그래서 양심은 늘 올바르고 착한 행동을 요구하는 하느님의 소리요 하느님의 마음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마음이 이미 인간의 마음속에 거주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하느님의 마음인 이 양심의 현존을 깨닫고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노력의 결과는 의(義)를 향한 회개와 회심으로 드러나게 된다. 회개와 회심을 결심하고 실행하는 사람은 기쁠 수밖에 없으며, 이를 두고 하늘에서는 더 기뻐할 것이다.(15,7) 내일이 아니라 ‘오늘’ 양심과 만나 회개하는 사람은 분명히 오늘이 가기 전에 구원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