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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개선문 - 레마르크

by Oh.mogilalia 2023. 1. 24.

여인은 비스듬히 라비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빠른 걸음이었지만 이상스레 휘청거렸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왔을 때에야 그는 그녀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튀어나온 광대뼈, 넓은 양미간, 그리고 창백한 얼굴이었다. 얼굴은 굳어 있어 탈이라도 쓴 듯했다. 여인의 눈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유리 같은 공허한 표정을 담고 있었다.


“잊어버려요. 후회세상에서 가장 쓸모 없는 것이오. 되찾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다시 잘 해 보자 해도 소용 없는 것이고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린모두 성인(聖人)이지. 하늘은 우리를 완전한 인간으로 만들겠다고는 생각지 않았단 말이오. 완전한 인간이 있다면 박물관에나 가 있는 게 알맞겠지.”

“우리들은 그 어리석은 것으로 살아가고 있거든. 사실이라는 말라 빠진 빵조각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야. 그렇지 않다면 사랑이란 어떻게 되는 거지?”
“그것이 사랑하고 무슨 관계가 있어요?”
“관계가 있고말고, 그건 사랑을 영원히 존속시키는 역할을 하거든. 만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은 단 한번 연애를 할 것이며 다음 것은 모조리 싫다고 할 것이 아니겠어. 그런데 자기가 버린 사람에 대한 동경의 찌꺼기가 새로 나타나는 사람의 머리에 둘러씌우는 후광(後光)이 되는 거야. 말하자면 전에 무엇인가 잃어 버렸다는 사실이 새로운 사람에게 일종의 낭만적인 빛을 더하게 되는 것이란 말이야. 이것은 경건하고도 낡아 빠진 속임수이지만.”

카톨릭의 교리 문답서에서는 기묘하고도 조심성스러운 공포심을 가지고 그것을 영혼에 대한 죄라고 했으며 전체 교리에 모순을 일으키면서까지 그 죄는 이 세상에서도, 내세에서도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고 음험하게 덧붙이고 있는 것이다.


라비크는 담배를 찾았다. 하나도 없다. 그러나 짐 속에 많이 넣어 두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렇군요.” 하고 그는 말했다. “인간이란 여러 가지를 참아 낼 수 있으니.”
트럭은 바그람 가를 따라가다가 에투알 광장으로 구부러졌다. 어디에도 불이 켜진 곳은 없었다. 광장은 어둠뿐이었다. 너무나도 어두워서 개선문조차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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