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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사항

성(聖) 토마스(Saint Thomas) 복음서

by Oh.mogilalia 2019. 12. 18.

선불교와 예수 ("토마스 복음서" 이집트 사해문서)
박건주 2006-08-16 14:33:24
81 이집트의 사해문서
52개 파피루스가 밝혀준 예수 부활의 진실

혹시 기독교의 “성(聖) 토마스(Saint Thomas) 복음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성 토마스의 복음서는 오랫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 있다가 1945년 나그 하마디라 불리는 이집트의 사막 도시의 동굴 속에서 52개의 파피루스가 발견되면서 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하지만 도대체 기독교의 성서 한 부분의 발견이 우리의 불교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사실 여기에는 엄청난 의미가 담겨있다. 약 1600여 년간 묻혀 있었던 이 귀중한 문서는 예수와 가르침과 부처님의 가르침 사이에 상당한 유사성이 존재함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약 성경, 그 중에서도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이집트에서 그의 어린 시절 상당 기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집트는 당시 비단길로도 알려진 실크로드가 끝을 맺는 종착지였고 그 결과 이집트는 물질적으로 재물이 넘쳐나고 여러 문화가 유입되는 덕분에 다양한 종교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잊혀진 복음서의 발견

심지어 그 당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는 테라페우타이타(Therapeutae: 1세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근처의 마레오티스 호숫가에 거주했으며 일반적으로 금욕적 유대교의 종파로 알려져 있지만 불교의 영향을 받은 집단으로 추정되고 있다)라고 불리는 불자들의 모임마저 존재했다고 한다. 오늘 날에도 몇몇 사람들은 예수가 불교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을 지도 모른다고 믿는 학자들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나그 하마디에서 발견된 다른 문서들과 더불어 토마스의 복음서를 살펴보면 그들이 말하는 주장의 증거가 될 만 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모든 종교적, 신비주의적 전통에 있어서 비슷한 철학적 개념을 다만 서로 다른 어휘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예를 들어 몇몇 사람들은 ‘극락’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천국’이라고 명하지만 그 곳에서 누리는 경험은 똑같을 것이다.

이러한 학자들은 토마스의 복음서가 기존의 신약 성서의 복음서들보다 더 오래된 가르침들을 기술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내용들은 역사상에 존재하는 예수의 실제 인생에 많이 근접해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기 62년에 쓰여진 이 토마스에 의한 복음서는 젠 불교의 가르침과 놀랄 만한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다.

토마스의 복음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예수가 그 자신과 신을 하나로 일치시키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가 언급한 깨달음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깨달음과 유사하며 이는 후에 다시 젠 불교 스승들에 의해 가르쳐지고 있다. 토마스의 복음서 내에서 예수는 한번도 구세주라고 표현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를 따르던 제자들과 유사한 지위를 지닌 영적 지도자로서만 소개되었다. 게다가 토마스의 복음서에는 초자연적인 처녀 잉태에 관한 이야기나 성모 마리아에 관한 언급도 찾아볼 수 없다. 

또 기독교의 중심 사상 중 하나인 원죄(原罪)에 관한 내용을 찾아 볼 수 없으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거나 부활했다거나 하는 사실이 언급되지 않았다. 또한 예수가 온 인류가 저지른 죄를 대신 짊어지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다는 내용, 예수를 섬김으로써 죄를 회개 받고 마침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내용도 담겨있지 않다. 토마스의 복음서에는 여성들이 배제되지도 않았다.

드러난 초기 기독교의 실체

그렇다면 이 토마스의 복음서가 왜 기독교의 성서에 실리지 못하고 자격을 박탈당한 후 결국은 매장당하고 말았을까? 서기 4년경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재임 시기에 로마 제국은 제국의 힘을 강화시키고자 엄청난 노력을 쏟고 있었다. 황제는 바울의 사도(使徒)를 선택하여 현재의 신약성서를 ‘공식 종교’로 선언하였다. 토마스에 의해 쓰여진 복음서들 속의 내용 그리고 나그 하마디에서 발견된 문서들의 내용들은 기독교적 정서나 정치적 구조를 유지하는데 위험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왜냐하면 그 내용들은 주교나 신부의 권위를 부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런 정치적 이유 때문에, 모든 문서들이 금지되었고 후에 로마 제국과 교회의 번영을 위해 파괴되고 말았다. 만약 예수가 천국이 모든 사람들 내에 존재하고 사람들은 어떤 종교적 권력도 또, 신과 그들 사이에 어떤 중재자도 필요 없음을 강조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주교나 신부들은 그들의 권력과 영향력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는 서양 불교, 불교는 동양 기독교”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법보 신문 독자들은 왜 내가 초기 예수의 가르침에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지 아마도 궁금해 하고 있을 것 같다. 예수의 가르침에 관심을 갖고 조사에 임하는 목적은 단지 예수를 깎아 내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토마스의 복음서가 우리 선 불교의 전통과 매우 유사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자의 시각을 통해, 또 불자로서 내가 가진 생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토마스의 복음서를 연구하면서 나는 내 종교인 불교에 관하여 한층 더 깊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게다가 아무래도 유럽에서 태어나고 이곳에서 자란 나는 항상 기독교가 내가 사는 세계의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인 모든 부분에서 가장 큰 힘을 지닌 것 같음을 느끼며 살아와야만 했다. 이유를 불문하고 독단적인 교리만을 앞세운 복음 전파사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대신 나사렛의 예수의 가르침을 재해석해보는 것에 관심을 두어야 할 것 같다. 그럼으로써 예수가 우리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천국으로 나와 같은 일반 사람들을 이끌어 줄 수 있는 또 한 명의 보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불교가 지닌 강력한 매력과 힘 덕분에 멀지 않은 미래에 토마스의 복음서가 또 다른 불교의 경전 중 하나로 간주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로 인해 토마스의 복음서는 서양과 동양의 가장 큰 두 종교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을 이어주는 다리와도 같은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언젠가는 예수 그 자신이 서양의 보살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한 유명한 회교 학자 미르자 굴람 아흐메드는 한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불교는 기독교에서 원래 가르쳤던 내용들과 유사한 내용을 기술하므로 동양의 기독교라 할 수 있고 또한 같은 이유로 기독교는 서양의 불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칼럼니스트

토마스 복음서(The Gospel of Thomas) 전문
http://naver.me/5PQUudQQ
도마복음서 전문
http://naver.me/FkAnkTq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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