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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사항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김정운

by Oh.mogilalia 2019. 6. 11.

  사람들 앞에서 보이는 겸손은 대부분 티 나는 억지 겸손이다. 타인의 질투심을 자극해 쓸데없이 해코지 당하는 일을 피하려는 비겁한 전략하기 때문이다. 가짜인 거 다 안다는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운명에는 진실로 겸허해야 한다. 모두 내가 다 노력해서 된 거라고 우기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새벽에 불안해하며 깨지 않는다. 좀 더 자도 된다.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정서는 ‘그리움’이다. 글과 그림, 그리움의 어원은 같다.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 되고,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 된다. 고마움과 감사함은 그리움의 방법론이다. 고맙고 감사한 기억이 있어야 그리움도 생기는 거다. 분노와 원망으로 황폐화되고 파편화된 한국인의 집단 기억에 결여되어 있는, 고마움의 기억을 찾아나가는 한 해가 되어야 한 다. 어떻게든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만 생각 차이, 의견 충돌도 견뎌낼 수 있다. 그래야만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긴다.

  의자를 사야한다. 뒤로 약간 자빠지듯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그런 의자를 사야한다. 의자야말로 공간을 의미 있는 장소로 만드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왕과 귀족의 지배에서 풀려난 근대 부르주아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들만의 의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유명한 ‘치펀데일 풍 의자’가 바로 그것이다. 의자에 앉았을 때, 주체로서 삶이 확인된다. 

  고독과 소외감으로 아주 쉽게 분노하고, 삐치며,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우울한 단서를 찾아내 괴로워하는 '고약한 노인네 증후군'이 오십 초반인 내게 벌써 찾아온 거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곳의 내 모든 인간관계가 감각적 구체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숟가락을 잡으면 뜨게 되고, 포크를 잡으면 찌르게 된다. 도구가 행위를 규정한다는 말이다. 도구는 의식을 규정하기도 한다. 아주 편하고 기분 좋게 앉을 수 있는 뒤로 나자빠지는 의자로 규정되는 의식이란 바로 ‘소통과 관용’이다. 

  흉내내면 즐거워진다. 나이 들면서 삶이 재미없어지는 이유는 도무지 흉내낼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높이 올라갈수록 삶이 지루해지는 이유도 도대체 더는 모방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뛰어난 사람일수록 고독한거다. 가장 처절한 상황은 누굴 흉내 낼 생각도 없고, 그 누구도 나를 흉내 내 주지 않을 때다. 아, 세상이 이보다 더 쓸쓸할 수는 없는거다. 

  마주보기는 왜 인간에게만 가능한가? 미숙아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포유류는 어미의 배 속에서 완숙되어 태어난다. 일단 태어나면 몇 시간 내에 자기 발로 바닥을 딛고 일어선다. 인간만 미숙아로 태어난다. 제 몸 하는 가누는 것도 수개월이 걸린다. 그러나 이 갑갑하고 고통스러운 기간에 아기는 타인과 눈을 마주치고, 정서를 공유하는 능력을 배운다. 태어나면서부터 스스로 자기 몸을 가눌 수 있는 여타 포유류는 다른 존재와 눈을 마주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인간의 아기는 어쩔 수 없이 엄마와 눈을 마주쳐야 한다. 누워 꼼짝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이고는 오직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월급쟁이 생활을 때려치우기만 하면 바로 내 삶의 주인이 될거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큰 착각이다. 평생 추구해야 할 공부의 목표가 없을을 돈의 문제로 환원시키며 자신의 쫒기는 삶을 정당화하는 것 또한 참으로 비겁하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지 않을 관심의 대상과 목표가 있어야 주체적 삶이다. 우리가 젊어서 했던 ‘남의 돈 따먹기 위한 공부’는 진짜 공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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