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의 노래’를 읽고
생의 끝에서 넘치는 ‘긍정의 힘’
책을 덮었다. 그리고 나서도 한참동안 옴짝할 수 없었다. 바늘 촉이 닿은 듯 따끔따끔하던 감동의 여운이 남아있는 명치끝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대충 넘겼던 앞장을 다시 펼쳐 사진속의 나가이와 이야기속의 나가이, 다른 사진들도 번갈아 보았다. 불에 타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미도리의 유골사진 앞에서 오래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묵주와 함께 뒤엉킨 그녀의 유골은 수도승의 사리를 보는 느낌이었다.
한 여자의 지극한 사랑과 정성어린 기도가 한 남자의 정신세계와 숭고한 삶을 이끈 보이지 않는 힘이 아니었을까. 신도(神道)를 버리고 무신론에서 다시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돌아선 연유가 파스칼의 ‘팡세’ 때문이라고 하나 그것만은 아닐게다. 강인하면서도 순종적이며 신심깊은 미도리의 영향이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제게 가장 소중한 하느님, 아내가 기도하면서 죽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내의 유골을 양동이에 퍼 담으면서 오른손 뼈마디에서 묵주를 발견하고 중얼거린 기도다. 피폭으로 갑자기 죽음을 당하는 순간에도 묵주를 들고 있었던 미도리. 나가이가 새카맣게 타버린 아내의 유골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은 이유가 거기 있다.
가슴 저린 구절마다 모서리를 꺾어놓았던 책장을 펴고, 까맣게 밑줄 그은 글줄마다 형광펜으로 표시하며 다시 읽기 시작했다. 줄거리 위주였던 처음과는 다르게 이해가 어려웠던 부분까지 하나하나 곱씹으며 읽고 싶어서였다. 방사선의 과다 노출로 백혈병이라는 시한부를 선고받고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삶도 죽음도 아름답다는 대목에서 잠시 책을 내려놓았다.
타인에게 해당될 땐 그것이 보편적인 섭리가 되지만, 자신에게 닥치면 절대적 사건이 되어버리는 죽음. 생의 끄트머리에 놓인 사람이 그 절대적 사건 앞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는 것일까? 지난해 두 명의 친구가 암으로 생의 끈을 놓았고, 나는 지켜보았다. 시한부라는 안타까움은 차치하고라도 믿기 어려울 만큼 형편없는 모습으로 무너져 내렸다. ‘왜 하필 나인가’하는 하느님에 대한 원망도 따랐다. 그만큼 암의 고통은 잔혹한 것이었다. 그때의 생채기가 남아있는 탓인지 죽음과 대치중인 상태에서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가늠되지 않았다.
물먹은 스펀지처럼 내 몸 어느 부위든 누르기만 하면 눈물이 솟아 날 것 같은 적이 있었다. 삶의 오르막을 숨 가쁘게 넘을 때였다. 맨살로 세상과 맞서다보면 단련이 되고 감각기관마다 면역이 생기는 것일까. 나는 그 후 웬만한 일엔 울지도 감동하지도 않는다. 어떤 책을 읽어도 덤덤할 뿐이다. 더구나 교훈적인 책은 그렇고 그런 따분한 것이려니 지레짐작하고 만다. 그렇게 무디어진 내 감성의 한 자락을 ‘나가사키의 노래’가 흔들어 깨웠다.
“살아있다, 살아있어”
죽음을 앞둔 나가이가 잠에서 깬 새벽녘에 아이들의 숨소리를 듣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외친 말이다. 울컥 목줄을 타고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그렇다. 살아있음의 이 축복. 언제 한번 살아있음에 그토록 감격해본 적이 있었던가?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권태와 타성으로 견고해진 내안의 벽 한 귀퉁이가 정으로 쪼는 듯 균열이 갔다.
〈나가사키의 노래〉는 2차 대전 중 원폭이 투하된 비극의 도시 나가사키에서 짧은 생을 살다간 방사선 의학박사 ‘나가이 다카시’의 일대기다.
절망에 빠진 희생자들을 돌보고 치료하며 폐허를 재건하는데 헌신한 한 지성인의 모습이다. 그는 냉정한 이성과 뜨거운 사랑을 동시에 지닌 의사요 과학자며 평화주의자다.
독재자의 박해로 참혹한 죽음을 당한 26인의 순교지, 나가사키를 순례하고 돌아온 남편이 이 책을 들고 왔다. 별 관심이 없었다. 나가이가 숨을 거둘 때까지 머물렀던 오두막이며 우라카미 성당, 원폭추모기념관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으나 흘려들었다. 내 눈에 잘 뜨이라고 방 한가운데 책을 펼쳐두기도 했지만 나는 거치적거리는 허접물건을 치우듯 구석으로 밀쳐두곤 했었다. 마지못해 책을 펴들고서야 부실한 내 신앙생활에 대한 남편의 배려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일본’ 하면 경계의 촉수를 곤두세우게 되는 선입견도 관심을 갖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는지 모른다.
나가이는 원폭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죽어가는 몸으로 어린이와 이재민을 돌보는데 혼신을 다했다. 인간적 한계를 뛰어넘은 실천적 사랑이었다. 피폭의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서 생존한 환자 한명을 구해내지 못한 것에 두고두고 죄책감에 시달릴 만큼 책임감 강한 의사였다. 죄책감은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가하는 벌이어서 타인에 의한 벌 보다 더 고통스럽다.
그는 전쟁과 연루된 모든 사람들의 죄를 하느님께 보속하기 위한 희생 제물로 여겼다. 그런 믿음이 자신의 아픔이나 희생자들의 상처를 보듬는데도 도움이 되었으리라. 그들을 돌보면서 얻은 경험과 관찰은 다른 원폭피해자들을 치료하는데도 도움이 되었으며 피폭의 결과가 인류사회에 미치는 결과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기록을 남겼다. 홀로 남겨질 아이들의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찾아온 극심한 고통에도 펜을 놓지 않은 그의 의지와 부성애에 존경을 보내고 싶다.
우리가 인식하는 여러 사건들과 선입견, 막연한 적대감 때문인지 일본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가사키의 노래〉를 읽으면서 일본에 대해 조금 다른 각도로 이해하게 되었다. 일본교회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었으며, 대다수는 선량한 국민으로 그들도 결국 전쟁의 피해자요 상처가 깊다는 것을….
오늘, 부활성야미사에 참례하고 돌아왔다. 미사가 진행되는 내내 습자지에 번지는 먹물처럼 기쁨이 전신으로 스며들었다. 나가이 다카시가 깨우쳐준 선물이다. 귀밑머리 하얀 남편을 향해 고개를 깊게 숙여 평화의 인사 대신 ‘사랑합니다’란 인사를 보냈다. 옆 사람의 손도 힘주어 잡았다. 병상에 누운 나가이 박사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일이라고 적고 있다. 미사에 건성이었던 내 신앙이 얼마나 얕은 물에서 찰박거렸는가를 돌아보게 하는 뜨끔한 구절이다. 크게 괘도를 이탈하지 않고 살았다 해도 그것과는 다르다.
“기도하시오. 제발 기도하시오.”
나가이 다카시가 죽어가면서 남긴 마지막 충고다. 우리 모두는 순례자다.
그가 이 땅의 순례자들에게 들려주는 이 충고는 우리가 무엇에 중점을 두고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준다. 상처받은 사람들에게서 치유와 화해를 이끌어내고, 처절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찾아내어 죽음의 땅에 생명을 싹틔운 사람. 절대빈곤과 뼈아픈 상실에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기도를 잊지 않았던 신앙인. 고통의 연속이었을 그의 삶 어디에서 그토록 건강한 긍정의 힘과 감사가 넘쳐흐르게 했을까. 아마도 하느님께서는 탐욕스럽고 감사할 줄 모르며 전쟁과 파괴를 일삼는 우리 인간들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 그를 이 땅에 보냈는지도 모른다. 〈나가사키의 노래〉는 지난시대를 살다간 특별한 사람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신앙인들이 두고두고 가슴에 담아 실행해야할 삶의 지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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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의 박해로 참혹한 죽음을 당한 26인의 순교지,
나가사키를 순례하고 돌아온 남편이 건네 준 책을 읽고 쓴 글이
가톨릭 신문의 창립 80주년 독후감 공모대회 일반부 대상에
당선되었다는 문아녜스님의 글을 실습니다.
바오로딸 홈지기수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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