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숙명 - 히가시노 게이고

by Oh.mogilalia 2023. 3. 11.

대기업 UR전산의 사장 우류 나오아키가 죽은 후 취임한 새로운 사장 스가이 마사키요가 살해당한다. 살인 흉기는 나오아키의 소장품이었던 석궁과 독화살이었고, 나오아키의 장남 아키히코와 차남 히로마사 등이 의심을 받는다. 아키히코는 아버지의 대를 이을 생각이 없었고, 의대에 진학하여 뇌신경외과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수사를 맡은 시마즈 경찰서에 근무하는 형사 와쿠라 유사쿠는 우류 아키히코와 오랜 인연이 있었다.
《숙명》이라는 제목처럼, 유사쿠와 아키히코는 오랜 숙적이었다. 중학교 때 만난 두 사람은 물과 기름처럼 달랐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리더 역할이었던 유사쿠와 달리 아키히코는 늘 혼자였다. 하지만 공부도, 운동도 유사쿠는 결코 아키히코를 이길 수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었다. 운마저 따라주지 않았다. 부잣집 아들이기도 한 아키히코를 유사쿠는 결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살인사건이 벌어진 후 아키히코를 만난 유사쿠는 그들 사이에 또 다른 숙명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한 여인을 사랑하고 있었다. 유사쿠의 첫사랑이고 지금도 잊지 못하는 미사코가 아키히코의 부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수사를 하던 유사쿠는 아키히코에게 비밀이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사건의 이면을 파고 들어간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그들을 둘러싼 숙명은 과연 무엇일까.
유사쿠와 아키히코에게 주어진 숙명은 전전대까지 올라간다. 아키히코의 할아버지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비밀 실험에 관여했다. 유사쿠가 살던 집 근처에 있는 벽돌 건물에는 당시 실험을 진행했던 의사가 있었다. 이야기 초반에 그들을 둘러싼 과거가 암시되고, 살인 사건의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비극적인 과거가 드러난다. 히가시노는 《숙명》 이후 많은 작품에서 인간의 ‘과학 문명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
《숙명》에서도 비인간적인 인체 실험이 이루어진 이유는 “뇌 속에 정밀 부품을 심을 수 있다면 외부에서 전파를 보내서 감정도 조작 가능하지 않겠냐고. 그리고 그것이 가능해지면 어떤 상대든 스파이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인간이라는 존재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과 지구를 이기적인 목적으로 훼손하고 파괴하는 행동은 너무나 많이 있어 왔다. 그리고 지금,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인간의 오만과 욕심으로 빚어진 비극적한 사건들을 그리면서 인간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숙명》은 유사쿠와 아키히코의 오랜 갈등을 바탕으로 비극적인 운명을 파고든다. 《숙명》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운명’ 나아가 ‘숙명’의 무게를 느낀다. 반드시 의대를 가고 싶었던 유사쿠는 시험 전날 밤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기회조차 잃어버린다. 당장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유사쿠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찰이 되기로 한다. 연인인 미사코와도 헤어진다. 미사코는 자신의 실력으로 힘들다고 생각했던 대기업에 들어가 임원의 비서가 되었고, 그의 아들 아키히코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를 정말 사랑하는지 의심은 했지만,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미사코는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헤아리며 ‘보이지 않는 실이 아닐까. 그 실이 아직 존재하고 있어서 지금도 내 인생을 조종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만들어진 과거, 숙명은 연쇄적으로 그들의 현재를 뒤흔든다.
그러나 아키히코는 말한다. “나 이외의 사람이 내 인생을 정하는 건 딱질색이야.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이야.” 보통 숙명이라 하면 강력하게 옭아매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말한다. 유사쿠와 아키히코에게는 숙명이 있었다. 그들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정해져 있는 것들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키히코는 자신이 어떤 숙명에 놓여 있는지 조금 먼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선택과 의지로 다른 길을 걸었다. 유사쿠와 미사코는 시간이 흐르고야 겨우 숙명을 알게 되었다. 그들 모두 숙명이란 결국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달려 있음을 알게 된다.
김봉석의 '숙명' 해설 중에서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통기한 꽤 지난...  (0) 2023.03.13
전화번호 변경 및 해지  (0) 2023.03.12
요한 현대자동차 생산직 대졸 사원 모집  (0) 2023.03.09
또 결막하출혈  (0) 2023.03.09
심성 - 선과 악  (0) 2023.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