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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

시온주의에 반대해야 하는 10가지 이유

by Oh.mogilalia 2019. 4. 20.

유대인 사회주의자가 말한다
시온주의에 반대해야 하는 10가지 이유

존 로즈  《강탈 국가, 이스라엘》의 저자 , 번역 최병현
234호 | 2017-12-27 | 주제: 국제, 중동

유대인 사회주의자 존 로즈는 이스라엘 국가의 공식 이데올로기인 시온주의가 유대인과 아랍인 모두에게 재앙이었으며, 중동 일대에서 유대인과 아랍인이 평화롭게 공존한 역사를 무시한다고 말한다.

1. 시온주의는 유대인이 유대교의 발생지로 돌아와서 오직 유대인만의 국가를 수립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2. 팔레스타인은 중동에서 발생한 세 개의 거대 일신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에게 중요한 땅이다. 그 셋 중 어떤 종교도 그 땅에 대해 배타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3. 시온주의는 서기 70년에 로마 제국이 예루살렘의 유대교 성전을 무너뜨렸을 때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추방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 대다수 유대인은 로마 제국 시기에 이미 팔레스타인 땅 바깥에서 살고 있었다. 로마 제국 시기 내내 유대인들은 활발히 이주했고, 그 후에도 유대인들의 이주는 계속됐다. 로마 제국이 생기기 한참 전에도 번화한 유대인의 종교적, 상업적, 공예적 중심지가 이집트의 거대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에 존재했다. 로마 제국 건설 500년 전에도 유대인의 거대한 종교 중심지가 바빌론에 있었고, 수백 년 동안 이어졌다. 진정한 유대인의 역사는 비(非)유대인과 함께 살아온 유대인의 삶에 기초해 형성된 것이다.

4. 시온주의는 유럽의 반유대주의(또는 유대인 혐오)에 대한 유일한 해법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는 것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즉, 반유대주의를 불가피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5. 기독교가 지배했던 유럽은 종교적인 이유와 경제적인 이유에서 유대인을 박해했다. 유대교가 기독교식의 성경 이야기와 다른 설명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중세 유럽의 경제적 거래에서 유대인이 독특한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상인으로서 폐쇄적인 봉건 국가에 경제적 서비스를 제공했다. 유럽의 기독교인 지배자들은 유대인을 이용하는 동시에 학대했다. 유대인은 때때로 특혜를 받아 농민들의 분노를 샀다. 그러나 이는 탄압 때문에 농민 반란이 일어났을 때마다 유럽 지배자들이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잘 써먹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6. 계몽주의와 18세기 미국·프랑스 혁명은 반유대주의를 극복할 기반이 됐다. 혁명으로 유대인 평등권이 공식적으로 보장됐다. 물론 실제로 구현되기까지 유대인들이 투쟁해야 했지만, 서유럽에서는 유대인 평등권이 점차 자리잡기 시작했다. 해방 유대교와 계몽주의가 창조적으로 충돌해, 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같은 19세기와 20세기 초 유럽의 위대한 지성이 탄생했다. 유럽 문화는 유대인들의 기여로 훨씬 더 풍요로워졌다.

7. 시온주의의 진정한 뿌리는 동유럽에서 시작됐다. 19세기 말 전 세계 유대인의 절반 이상은 차르가 지배하는 붕괴 직전의 러시아 제국에서 살았다. 유럽식 현대화로 러시아 봉건 지배자들은 새로운 도전을 맞았다. 혁명이 그들을 쓸어버릴 위기 속에서 유대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차르는 의도적으로 끔찍한 대규모 유대인 학살을 벌였다. 유대인들은 학살을 피해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주로 서유럽과 미국으로 도망쳤다. 오직 소수만이 시온주의자들의 호소에 응해 팔레스타인으로 갔다. 이들이 시온주의자 정착지의 핵심을 구성했다. 시온주의는 서방 제국주의 열강이 지원한 식민지 운동이었다.

8. 식민지 사회주의 같은 것은 없었다. 시온주의 개척자들은 수세기 동안 팔레스타인에서 농사를 지어 온 아랍 농민들을 쫓아냈다. 키부츠 “공동체”는 오직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었다. 시온주의는 서방 제국주의의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영국은 제1차세계대전 승리의 보상으로 팔레스타인을 점령했다. 영국은 자신의 지배를 공고히 하려는 수단으로 시온주의 정착지를 이용했다. 1921년 당시 식민장관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시온주의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영국 제국에게도 좋은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 직후에는 미국이 중동의 패권을 쥐고 이스라엘을 지원했다. 1981년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이렇게 설명했다. “실전 경험이 있는 군대를 가진 이스라엘이 중동에 있는 것은 사실 우리에게 이득이다. 만약 이스라엘에 그런 군대가 없었다면, 우리 군대로 이스라엘을 지원해야 했을 것이다.” 20세기 말까지 미국은 이스라엘에 1000억 달러를 지원했다.

9. 나치가 홀로코스트를 벌였다고 해서,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인을 내쫓고] 팔레스타인에 그들만의 국가를 수립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선언문은 독립을 정당화하는 이유로 홀로코스트를 명시적으로 이용했다.
같은 해, 이스라엘 국가 수립을 위해 팔레스타인인 거의 100만 명이 자신의 터전에서 쫓겨났다. 달리 말하면, 유럽에 벌어진 학살의 대가를 팔레스타인인들이 치러야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국가는 토착 팔레스타인 아랍 민중을 배제하고 수립됐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결함이다. 영구적인 평화 정착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해결돼야 할 잘못이다. 시온주의자들은 홀로코스트를 이데올로기적·도덕적 협박 도구로 사용해 팔레스타인 땅을 도둑질한 행위를 정당화하려 한다. 이스라엘은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범죄의 기억을 심각하게 악용하고 있다. 시온주의는 아랍인과 유대인의 평화적 해결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그런 해결은 분명히 가능하다.

10. 시온주의 국가 구조는 아랍인들을 희생해 유대인들에게 특혜를 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참된 평화를 가로막는다. 아랍인과 유대인의 관계는 시온주의 정착지가 생기기 전에 훨씬 더 좋았다. 평화로웠던 이전의 역사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우익 학자 버나드 루이스조차 이슬람 문명의 절정기에 이슬람계 아랍인과 유대인의 “공생”, 즉 아랍인과 유대인이 공통의 “이슬람·유대” 문화 속에서 관계를 꽃피웠던 시기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또한, 지난 세기 아랍 땅에서 유대인들이 보였던 깊은 애착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이라크에서는 영국이 세운 꼭두각시 왕정에 맞서 ‘알 와스바’(거대한 도약)라 불린 대중 반란이 있었다. 이라크 태생 젊은 유대인 다수가 이 반란에 참가했다. 유대인 참가자가 너무 많아서, 시온주의자들조차 이 시기를 “인류애의 시대”라고 인정했다. 그들은 또한 이라크 내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가 “가망 없어” 보인다고 적었다. 안타깝게도 이라크의 운동은 패배했고, 시온주의자들, 미국·영국·이라크 정부는 이라크 내 유대인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이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지난 세기의 비극 중 하나다. 20세기 초만 해도 이라크 최고의 음악가 100명 중 3분의 1 이상이 유대인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아랍인과 유대인 공통의 평화로웠던 과거. 바로 여기에 희망의 불씨가 있다. 이 불씨가 지금과는 다른 미래로 가는 길을 비추고 있다.

출처: 영국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 2011호
https://wspaper.org/article/19815

 

유대인 사회주의자가 말한다: 시온주의에 반대해야 하는 10가지 이유

1. 시온주의는 유대인이 유대교의 발생지로 돌아와서 오직 유대인만의 국가를 수립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2. 팔레스타인은 중동에서 발생한 세 개의 거대 일신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에게 중요한 땅이다. 그 셋 중 어떤 종교도 그 땅에 대해 배타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3. 시온주의는 서기 70년에 로마 제국이 예루살렘의 유대…

wspaper.org

참고 도서 : 약속의 땅 이스라엘 / 아리 샤비트 지음 / 최로미 옮김 / 글항아리 펴냄(이민과 식민 사이…이스라엘 `모순의 역사`)

책 속에서   
깊은 밤 동굴 입구에서 울부짖는 바람 속에 극적인 마사다 의식이 끝났다. 간부 후보생들은 노동 청년 마사다 명부에 서명하고 이를 유리병에 넣어 봉한 후 세워둔 묘비 아래에 묻엇다. 사슬은 끊어지지 않았다고 외쳣다. 마사다는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위해 싸울 것을 요청한다고 와쳤다. 사회주의 찬가를 불렀다. " 이 땅을 건설하는 우리 형제들의 손이여 강해져라." 국가를 불렀다. "희망은 아지 사라지지 않았다." 이어 젊은이들은 천막을 거두고 배낭을 싸서 산을 내려왔다. 이제 자신들 의식에 각인된 산을. (본문 148쪽) 

마사다는 유대 민족의 외로움에 대한 신화적이며 거의 형이상학적인 암유였다. 늘 그렇듯, 이츠하크 타벤킨은 이 새로운 통찰을 가장 무자비하게 표현하는 인물이었다. ‘우리 감정은 궁극적인 외로움에 다름 아니다……. 유대인이 얼마나 살아남을지 알 도리는 없다……. 나치가 유대인을 그야말로 100퍼센트 절멸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쓰라린 일이다. 우리가 고독하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 세상이 우리의 적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본문153쪽)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여단장과 군정장관이 훗날 이스라엘 자유주의자들이 보인 위선적 동정심에 분노한 건 당연했다. 그들은 리다에서 여단장과 군정장관 일파가 저지른 일을 비난하면서도 그 행위의 열매는 만끽하고 있다. 나는 불도저를 비난한다. 이 저격수를 거부한다. 그러나 여단장과 군정장관, 훈련 집단 소년들을 욕하지는 않으리라. 오히려 그 반대다. 필요하다면 이 저주받은 사람들 편에 서리라. 이들이 아니었다면 이스라엘국은 태어나지 못했으리라는 사실을 아는 까닭이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나라는 존재는 태어나지 못했으리라. 과거 이들이 저지른 더럽고 추잡한 일이, 현재 내 민족과 나 자신, 내 딸과 내 아들들을 살게 한다.” (본문 204쪽)

랍비의 외침이 귓가에 메아리쳤다 빈눈은 내게, 당시 창공이 열려 땅에 닿은둣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말햇다."느닷없이, 땅이 우리에게 외치고 있었소. 우리에게 오라며 손짓하고 있었소. 땅은 우리의 영혼을 채웠소." (본문 310쪽)  

우리는 도시와 국가, 조국을 공유한다. 공통된 가치관과 신념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이에는 끔찍한 균열이 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되겠는가, 모하메드?' 난 어둠 속에서 생각한다. (본문 491쪽) 

힐다는 일기에 적었다. "미래는 무엇을 담고잇는가?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의 운명은 낯선 자들의 손안에 있으니 우리는 단지 의무를 다하며 신에게 위탁할 수 있을 따름이다." 몇주 후, 나하리야의 이조그만 집에 처음으로 한 줄기 서광이 스며들었다. 힐다는 일기에 적었다. "우사에 젖소들을 거둔 지 이제 8일째다. 집에는 우유가 있다. 신선한 흰 우유, (본문 512쪽)    

난 다른 술집에 들어가 바에 앉아 싱글몰크를 홀짝이며,『세 가지 최악과 하나의 기적』을 다시 읽는다. 창을 통해 이 고대항구를 보고 식당에 앉아있는 사람들과 갤러리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 잔교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다시 한번 지켜본다. 난 생각한다. 결국, 시온주의는 유대인의 생명력을 되살리자는 사상이었다. 이스라엘 이야기는 모든 역경에 맞선 생명력의 이야기다. 그러니 그 정신의 이중성이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한 최고로 따분하면서도 껄끄러운 민족이다. 우리는 청교도주의나 감상벽은 견디지 못한다. 언쟁이나 고귀한 개념 따위에 의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루하루 경이로운 역사의 미래상에 동참하고 있다. 우리 자신보다 훨씬 더 큰 사건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지도 못하고 파악할 수도 없는 서사 영화에 출연한 오합지졸이다. 대본 작가는 미쳐버렸다. 감독은 달아났다. 제작자는 파산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곳, 성서의 땅이라는 영화 촬영장에 있다. 카메라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전경을 촬영하다 문득, 우리가 이 해안에 집결하는 모습을 잡는다. 이 해안에 매달리는 모습을. 이 해안에서 살아 숨 쉬는 모습을. 어떤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본문 679쪽) 

옮긴이의 말
안에 담아두고 있으면 거기에 매몰되어 버릴 듯 강렬한 기억이 있다. 이 자전적 글에서 그런 절박한 노력을 보았다. 내면에 자리를 틀고 자신을 집어삼킬 듯한 모순의 역사를 필사적으로 끄집어내려는, 그럼으로써 정당하게 숨쉬고 싶은 갈망을. (옮긴이의 말 중에서 682쪽) 

역자 : 최로미
역자 최로미는 전문 번역가. 근간으로 『문어의 넋』이 있다.

​저자 아리 샤비트Ari Shavit
이스라엘 중부 도시 레호보트 태생. 저명한 이스라엘 칼럼니스트이자 작가며, 중동 문제에서 가장 권위 있는 언론인이다. 이스라엘국방군IDF에서 낙하산병으로 복무했고, 이후 예루살렘 소재 히브리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80년대에 이스라엘의 진보적 주간지 『코테레트 라시트Koteret Rashit』에서 많은 기사를 썼고, 1990년대 초 ‘이스라엘 시민권협회’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1995년부터 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래된 유력 일간지 『하아레츠Haaretz』에 들어가 수석기자로 근무했다. 또한 이스라엘 공영방송국에서 주요 시사평론가로 활약했다. 현재 결혼해 딸 하나와 두 아들을 둔 가장으로, 크파르슈마리아후에 거주한다. 포르투갈, 체코, 덴마크,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헝가리, 폴란드, 브라질, 스페인, 터키, 중국, 베트남, 영국, 미국 등 16개국에서 출간된 그의 역작 『약속의 땅 이스라엘』은 미국 아마존에 독자 서평이 1700개 이상 달리는 호평 속에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지금도 이스라엘과 중동 문제를 이해하는 최고의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뉴욕타임스 북 리뷰』 『이코노미스트』 『타임』 『선데이타임스』 ‘올해의 책’에 뽑혔다. 2013년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사회적 혁신을 지원하는 나탄 기금의 ‘나탄 도서상’을 받았고, 이어서 2014년에는 마틴 루서 킹, 토니 모리슨, 네이딘 고디머 등이 수상한 바 있으며 인류 문화의 다양성과 박애주의를 이해하는 데 기여한 책에 수여하는 아니스필드-울프 도서상, 전미유대인도서상을 수상했다. 『약속의 땅 이스라엘』은 2017년 영화로도 개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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